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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서씨] 서거정(徐居正)

작성일 : 2017-10-23 13:21

1420(세종 2) 1488(성종 19). ()는 강중(剛中), 초자(初字)는 자원(子元), ()는 사가정(四佳亭), 정정정(亭亭亭), 시호(諡號)는 문충(文忠), 목사(牧使) 미성(彌性)의 아들, 권 근(權 近)의 외손(外孫). 1438(세종20) 생원(生員), 진사(進士)에 합격, 1444(세종 26)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사재감 직장(司宰監直長)을 지내고 1451(문종 1)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1452(문종 2) 수양대군(首陽大君 : 세조)이 명나라에 사신(使臣)으로 갈 때 서장관(書狀官)으로 수행하여 압록강을 건너 파사보(婆娑堡)에서 달이 떨어지는 꿈에 놀라 일어나 눈물을 지으니 동숙자(同宿者)의 물음에 달은 모상(母像)이라 노모(老母)가 재가(在家)하니 꿈이 불길하여 슬퍼한다고 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수양대군은 그의 지극한 효성(孝誠)이 하늘을 감동시켰다고 귀국시키니 돌아와 모친의 삼년상(三年喪)을 마치고, 1455(세조 1) 성균관 사예(成均館司藝)․집현전 박사(集賢殿博士)․부수찬(副修撰)․응교(應校) 등을 역임하고, 1457(세조 3) 문신중시(文臣重試)에 병과(丙科)로 급제, 이듬해 문신정시(文臣庭試)에 장원하였다.

후에 공조 참의(工曹參議)․예조 참의(禮曹參議)를 지내고 이조 의(吏曹參議)이 되어 1460(세조 6)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가서 그곳 학자들과 문장과 시()를 논하고 해동(海東)의 기재(奇才)라는 찬탄을 받았다.

귀국 후 대사헌(大司憲)이 되고 이어 형조 판서(刑曹判書)․성균관지사(成均館知事)․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이 되었다. 1466년 발영시(拔英試)에 장원 후 6()의 판서(判書)를 두루 지내고, 1470(성종 1) 좌찬성(左贊成)에 올라 이듬해 좌리공신(左理功臣) 3등으로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졌다.

1478(성종 9) 홍문관 대제학(弘文館大提學)을 겸하니 조선시대 최초로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이 되었으며, 여섯 왕을 섬겨 45년간 조정에 봉사, 수차 전형(銓衡)을 담당하여 많은 인재를 뽑았고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여 세조(世조) 때 「경국대전(經國大典)」「동국통감(東國通鑑)」의 편찬에 참여했으며, 또한 왕명으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을 국역했고, 성리학을 비롯하여 천문․지리․의약 등에 이르기까지 정통했다. 한편 시화(詩話)의 백미인「동인시화(東人詩話)」와「동문선(東文選)」등을 남겨 신라 이래 조선 초기에 이르는 시문을 선집, 한문학을 대성했다. 대구의 귀암서원(龜巖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