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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백씨] 백관수(白寬洙)

작성일 : 2017-08-28 15:47

1889 (고종 26) ()는 근촌(芹村), 도진(道鎭)의 아들. 전북 고창(高敞) 출신. 1915년 경성법학전문학교(京城法學專門學校)를 졸업하고 YMCA 간사(幹事)를 거쳐 이듬해에 중앙학교(中央學校) 교원 겸 서무주임이 되었다.

그후 일본에 건너가 메이지 대학(明治大學) 법학과(法學科)에 입학, 19192월 도오꾜오(東京)에서 조선청년독립단(朝鮮靑年獨立團)을 조직하여 단장이 되고 최팔용(崔八鏞)․송계백(宋繼白) 등 유학생들과 협의, 학생대표 11명의 한 사람으로 28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검거되어 1년간 복역했다.

1921년 메이지대학을 졸업하고 귀국, 1924년 조선일보사(朝鮮日報社) 상무이사 겸 영업국장에 취임했고, 192 7년 하와이에서 열린 만국기독교 청년회 주최 제2차 태평양회의에 조선 대표로 참석했다.

그후 홍문사(弘文社)를 창설, 월간지 「동방평론(東方評論)」을 3년간 간행했으며, 1929년 제3차 태평양 대회에 조선 대표로서 다시교오또(京都)에 다녀왔다. 1937년 동아일보사(東亞日報社) 사장이 되고, 1940년 폐간당할 때 이를 항의하다가 1개월간 구금되었다.

해방 후 한국민주당(韓國民主黨) 총무(總務)에 선임되고, 미국 군정하의 민주의원(民主議院)․입법의원(立法議院) 등의 의원을 역임, 1948년 제헌국회의원(制憲國會議員)에 당선되어 법제사법 위원장․헌법 제정의원을 지냈으나 625 사변 때 납북(납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