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02 14:40 수정일 : 2017-08-02 14:43
공양왕(恭讓王) 때 참지문하부사(參知門下府事)가 되었다. 성품이 강직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정몽주(鄭夢周)․길 재(吉再)등과 교유가 있었다. 고려 말 정치가 문란하여 사천(沙川)에 은거, 1392년조선의 개국 후 태조(太祖)의 부름을 듣지않았다.
충절에 감복한 태조에 의해 사천백(沙川伯)으로 봉해지자 더 깊숙히 감악산(紺嶽産)에 들어가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사후 그가 거처 한 자리를 남선굴(南仙窟)이라 했고, 영조(英祖) 때 사천서원(沙川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