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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하노씨] 노공필(盧公弼)

작성일 : 2017-07-28 15:36 수정일 : 2017-07-28 15:39

1445(세종 27) 1516(중종 11)  자는 희량(希亮), 호는 국일재(菊逸齋), 영의정 노사신(盧思愼)의 아들. 1462년(세조 8) 사마시 (司馬試)를 거쳐 1466년 알성문과(關聖文科)에 급제, 홍문관전한 (弘文館典翰) · 부제학(副提學)을 지내고, 병조 · 이 조 · 예조의 참의(恭議)를 역임한 후 도승지(都承旨) . 대사헌(大司憲)에 승진했다.

1489년(성종 20) 공조판서 (工曹判書)가 되고, 이어 6조(六曹)의 판서(判書)를 역임, 대제학, 문형(文衡)에 올라 당대 최고의 학자로 추앙 받았다. 이어서 경기도관찰사(京畿道觀察使)로 나갔으며 , 1498년(연산군 4) 참찬(恭贊), 뒤에 찬성(贊成)에 올랐고,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甲子士禍)에 무장(茂長)으로 장배(杖配)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우찬성(右贊成)에 영경연사(領經廷事)로 특진, 이듬해 중종(中宗)의 승습(承襲)을 청하러 명나라에 간 사신이 승인을 못 받고 귀국하자 노공필이 재차 사절로 가서 명제(明帝)의 승인을 얻고 귀국,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가 되었다. 70세에 사직하고자 했으나 불윤하며 궤장(凡丈)을 하사받고 퇴임 王도 입사하는 기로소(耆老所: 耆老社)에 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