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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조씨] 조운흘(趙云仡)

작성일 : 2017-06-29 10:44 수정일 : 2019-09-06 14:50

1332(충숙왕 복위 1)1404(태종 4) ()는 석간(石磵), 평장사(平章事) ()의 후손. 흥안군(興安君) 이인복(李仁復)의 문인(門人). 1357(공민왕 6) 문과(文科)에 급제. 안동 서기(安東書記)가 되고, 각문 사인(閣門舍人)을 거쳐 1361(공민왕 10) 형부 원외랑(刑部員外郞)에 올라 홍건적(紅巾賊)의 침입으로 남쪽에 피난하는 왕을 호종(扈從)하여 13632등공신이 되었다.

이듬해 국자 직강(國子直講)이 되고 이어 전라(全羅)․서해(西海)․양광(楊廣) 삼도 안렴사(三道按廉使)를 지내고, 1374(공민왕 23) 전법 총랑(典法摠郞)으로서 벼슬을 버리고 상주(尙州) 노음산(露陰山) 기슭에 은거, 출입할 때에는 소를 타고 다니면서「기우도(騎牛 圖)」․「찬석간가(贊石磵歌)」 등 작품을 지었다.

1377(우왕 3) 다시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에 기용,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를 지내고, 1380년 광주(廣州) 고원 강촌(古垣江村)에 은퇴, 자은사(慈恩寺)의 중 종림(宗林)과 친교를 맺으며 사평원(沙平院)․판교원(板橋院)을 중건하여 스스로 원주(院主)가 되었다.

1388(우왕 14) 전리 판서(典吏判書)에 기용되고, 이해 창왕(昌王) 즉위 후 서해도 도관찰사(西海道都觀察使)로 나가 왜구(倭寇)를 토벌 했으며, 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를 거쳐 1390(공양왕 1) 계림부윤(鷄林府尹)으로 나갔다.

1392년 조선 개국 후에 강릉 부사(江陵府使)로서 선정(善政)을 베풀고 이듬해 신병으로 사직, 검교정당문학(檢校政堂文學)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광주에서 여생을 마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