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9 17:53 수정일 : 2017-06-20 09:51
안성(安省) (? ~1421)은 큰 벼슬보다는 그 청렴함이 후세에 전한다. 우왕 6년 문과에 급제하여, 보문각 직제학(寶文閣 直提學), 상주판관(尙州判官) 등을 지냈으며, 판관(判官) 재직중 다 허물어진 상주성(尙州城)을 중수(重修)하였다. 조선조에서는 봉상시 소경(奉常寺 少卿)이 되었으며, 개국 후 최초로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다. 태종12년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 정조부사(賀正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바 있다. 후에 개성류후사 류후(開城留侯司 留侯)를 거쳐 태종 18년 평양감사(平壤監司)를 역임했으며, “임기를 다하고 떠나올 때에 공의 짐짝을 눈 여겨 보았 드니 평 소에 탐독하던 서적 몇 권과 누더기 이불 몇 채가 나귀등에 매달려 가는 것을 보고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전북 장수(全北 長水)의 용암서원(龍岩書院)과 남원(南原)의 호암서원(湖岩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사간(思簡)이다.
태종 14년에 강원도관찰사에 임명될 때에 고신(安省 江原道都觀察黜陟使 告身 )과 함께 특별히 “과인치내 경치외 사차만민 개득기소(寡人治內 卿治外 使此萬民 皆得其所-과인이 조정을 다스리고 경이 지방을 다스리면 만백성으로 하여금 모두 편안함을 누릴 것이라.)”라는 15자 어필편지(御筆便紙)를 받았다. 고신(告身)과 어필판각(御筆板刻)은 전북 장수군(全北 長水郡) 어필각(御筆閣)에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