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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김씨] 김일(金 鎰)

작성일 : 2017-06-15 10:30 수정일 : 2017-06-15 10:36

912(神德王1)()는 일() ()는 겸용(謙用)으로 경순대왕비(敬順大王妃) 죽방부인박씨(竹房夫人朴氏)의 장남(長男)으로 월성(月城)에서 태어났으며 경순대왕(敬順大王)이 즉위(卽位)한 그해 가을에 태자(太子)에 책봉(冊封)되었다. 929년 상국(上國) 김유렴녀(金裕廉女) 영란(英蘭)과 혼인(婚姻)하였으며, 930() 장남(長男) 선웅(善雄)932년 차남 순웅(次男順雄)이 출생(出生)하였다.

93510월 경순대왕(敬順大王)은 양국(讓國)에 관한 군신회의(羣臣會議)를 열어 논의(論議)하였으나 군신(羣臣)의 의논(議論)은 혹은 가()하다 하고 혹은 불가(不可)하다고 하였다.

태자(太子)가 말하기를 나라의 존망(存亡)에는 반듯이 천명(天命)이 있으니 마땅히 충신의사(忠臣義士)와 더불어 민심(民心)을 수합하여 스스로 굳게 함이 다한 후에 말것이니 어찌 천년 사직(社稷)을 하루아침에 쉽사리 남에게 내어 주겠습니까?” 하였다.

대왕(大王)은 외롭고 위태함이 이와같아 형세(形勢)는 능히 온전히 할 수 없으니 백성(百姓)을 차마 내가 참혹(慘酷)하게 할 수 없다. 하고 대왕은 고려(高麗)에 귀부(歸附)하였다.

태자(太子)는 통곡(痛哭)하면서 대왕(大王)과 이별(離別)하고 죽방모후(竹房母后)를 모시고 누이동생 덕주공주 그리고 충신열사와 맹장군(孟將軍)등 일만여인은 왕경(王京)을 떠나 영천(永川)의 금강산성(金剛山城)과 모자산(母子山)에서 유숙(留宿)하다가 군위(軍威)의 적라산(赤羅山)을 지나 상주(尙州) 천봉산(天鳳山)을 거쳐 문경(聞慶)의 조령(鳥嶺)을 넘어 괴산(槐山) 연풍(延豊)의 계립령마골참(雞立嶺摩骨站)에서 류진(留陣)하고 충주(忠州) 월악산(月岳山)에 입산(入山)하여 덕주산성(德周山城)을 쌓고 덕주사(德周寺)와 미륵탑(彌勒塔)을 쌓고 구국(救國)기도(祈禱)를 올리고 덕주공주(德周公主)는 이곳에 세천(世阡)되었다. 태자일행(太子一行)은 충주(忠州) 국망산(國望山)을 넘어 원주(原州)의 치악봉(雉岳峰)을 거쳐 양평(楊平)의 미지산(彌智山)인 용문사(龍門寺) 경내(境內)에 와서 은행목(銀杏木)을 심고, 홍천(洪川)의 지왕동(至王洞)에서 일행(一行)과 수비대(守備隊)가 잠정(暫定) 주둔(駐屯)하다가 인제(麟蹄)의 한계령(寒溪嶺)에서 한계성(寒溪城)을 쌓고 궁전(宮殿)과 군창(軍倉)과 옥녀탕(玉女湯)과 천제단(天祭壇)을 지었으며, 금부리(金富里)와 갑둔리(甲屯里)에는 왕족(王族)과 유족들이 웅거(雄據)하여 제2의 신라(新羅)를 재건(再建)할 목적(目的)으로 옥대곡(玉垈谷)에 체제(體制)의 질서유지(秩序維持)를 위하여 옥사(獄舍)를 설치(設置)하고, 강병곡(降兵谷)에 추종자(追從者)들의 통치부(統治府)를 마련하고, 성황당(城隍堂)에 방목(防木)을 식재(植栽)하고, 만가곡(挽歌谷)에는 맹창골에서 맹창장군(孟昶將軍)의 군훈련장(軍訓鍊場)이 있고, 태자(太子)가 가져온 옥새(玉璽)를 옥새암(玉璽岩)속에 소장(所藏)하고, 천지곡(天志谷)에 천제단(天祭壇)을 설치(設置)하여 구국(救國)의 기도(祈禱)를 올리고, 태자(太子)가 웅거(雄據)하는 풍남대(風喃垈)를 건축(建築)하고, 단지곡(斷趾谷)에는 단죄소(斷罪所)를 설치(設置)하고, 수령동(首軨洞)에 수거고(手車庫)를 설치(設置) ()바위에는 비상시(非常時)를 대비(對備)하여 군량(軍糧)을 비축(備蓄)하고 양구(楊口) 노고성(老姑城)의 고적봉군사전략기지(鼓笛峰軍士戰略基地)를 형성(形成)하였으며, 군량리(軍糧里)에는 군량미(軍糧米)를 비축(備蓄)하는 창고(倉庫)를 설치(設置)하였다. 금화(金化)는 신라(新羅) 부흥운동(復興運動)의 중요거점(重要據點)이었으며 안전(安全)한 이곳에서 머므르시던 태자(太子)의 어머니 박씨왕비(朴氏王妃)가 훙서(薨逝)하자 삼신산(三神山) 삼갑사(三甲寺) 인근(隣近)에 세천(世阡)되니 너무도 비통(悲痛)하여 개경(開京)을 향하여 망배(望拜)한 후 이제 다시는 돌아보지 않으리라 하고 돌아와 세천(世阡)하시니 신라재건(新羅再建)이 미급(未及)되 인제유민(麟蹄遺民)들이 금부리(金富里)3곳에 전각단간(殿閣單間)을 지어 영혼(靈魂)을 추모(追慕)하고, 단오절(端午節)과 중양절(重陽節)에 천년간(千年間)을 행사(行祀)하였으며, 그 애절(哀切)한 사연(事緣)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