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5 10:04 수정일 : 2017-06-15 10:09
신라(新羅) 진흥왕(眞興王)때의 장군(將軍)으로 김유신(金庾信)의 할아버지이고 금관가야(金官伽倻)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仇衡王)의 셋째아들이다. 532년 가야(伽倻)가 신라에 합병(合倂)되자 부왕(父王)과 왕모(王母) 및 큰형 노종(奴宗), 둘째형 무덕(武德)등과 함께 신라에 투항(投降)했다. 그는 진흥왕(眞興王)이 고구려(高句麗) 영역(領域)인 한강유역(漢江流域) 및 백제(百濟)의 점령지(占領地)를 탈환(奪還)하여 한성(漢城)을 중심으로 한 신주(新州)를 설치(設置)할 때 공(功)이 커 아찬(阿湌)의 벼슬로 이곳의 군주(軍主)가 되었다. 그후 백제(百濟)의 성왕(聖王)이 관산성(管山城:沃川)을 공격(攻擊)했을 때 주병(州兵)을 이끌고 교전(交戰)하여 성왕(聖王)을 전사(戰死)케 하고 백제의 좌평(佐平) 4명과 사졸(士卒) 2만9천6백명을 전몰(戰歿)시키는 공(功)을 세워 그 뒤 관등(官等)이 각간(角干)에 이르렀다.
아들 서현(舒玄)은 진평왕(眞平王)때 대량주(大梁州) 도독(都督)을 지냈으며 손녀인 문희(文姬)는 태종무열왕비(太宗武烈王妃)가 되었으며 손자 김유신(金庾信)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과 문무왕(文武王)을 도와 삼국통일(三國統一)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세속오계(世俗五戒)는 신라(新羅) 화랑도(花郞徒)의 중심이념(中心理念)이 되었다. 사군이충(事君以忠),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유신(交友有信),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