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4 15:51 수정일 : 2017-06-14 15:54
자(字):再父, 호(號):冶隱, 시호(諡號):忠節公 1386년(우왕12)문과에 급제하고 청주목(淸州牧) 사록(司錄)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387년 성균관 학정(學正), 이듬해에는 성균관 박사가 되어 공직에서는 학생들을 집에서는 양가(良家)의 자제(子弟)들을 교육했다. 1389년(창왕1) 문하주서(門下注書)가 되었으나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갔다. 조선(朝鮮) 건국 후1400년(정종2) 세자(世子) 방원(芳遠,태종)에 의해 태상박사(太常博士)가 되었으나 거절하고 후진교육에 전념하여 김숙자(金叔滋)를 비롯 김종직(金宗直), 김굉필(金宏弼), 조광조(趙光祖) 등으로 학통(學統)을 잇게 하였다.
금산의 성곡서원(星谷書院), 청풍서원(淸風書院), 선산의 금오서원(金烏書院), 구미의 오산서원(吳山書院),공주의 삼은각(三隱閣)에 제햫되었다. 저서에 야은집(冶隱集), 야은언행습유(冶隱言行拾遺), 야은속집(冶隱續集) 고려 유신의 회고시가 등을 남겼다.
회고시가(懷古詩歌)--眞本 靑丘永言
五百年 都邑地를 匹馬로 돌아드니
山川은 依舊한데 人傑은 간데없네
어즈버 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