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고령박씨,고령박씨 참의공파

작성일 : 2020-01-01 11:45 수정일 : 2020-01-17 04:16

고령박씨 참의공파 

고령박씨 참의공파는 윗대 3파 중 하나인 부창정공파 아래의 다섯째 지파이다.

 

1. 참의공 지파조(支派祖)

세조14년(1468년)에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에 급제하여 이조참의에 올랐던 박제순(朴悌順 15世)이 파조이다. 호조판서를 지낸 아버지 박임익(朴林益)과 어머니 문화류씨(한성좌윤 류호(柳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사헌부 장령(司憲府 掌令), 집의(執義),를 거쳐 승정원 우부승지(承政院 右副承旨)를 겸하여 춘추관(春秋館)의 편수관(編修官)을 지냈다.

그 후 이조참의使曹參議)에 올랐고 원종공신(原從功臣)으로 녹훈(錄勳)되었다. 아들 박세광(朴世光 16世)은 면천군수(沔川郡守)를 지냈고 증직(贈職)이 이조참의이고 호(號)는 사재(士齋)이다. 이 분은 목은(牧隱) 이색(李穡) 선생의 현손(玄孫) 이서(李湑)의 사위가 된다.

사재공(士齋公)은 3형제를 두었는데 박수봉(秀峰;17世), 수강(秀崗),수래(秀峽)이다.

후손들이 공(公)의 사단(祀壇)을 고종42년(乙巳年;1905년)에 서천군 화양면 북서쪽에 있는 일광산(日光山)에 설단하고 봉사(奉祀)하여 오다가 다시 경수산(敬守山)의 손자들 묘소 위로 옮겨 설단(設壇)하고 비(碑)를 세워 오늘에 이르렀다.

공의 아들인 사재공 박세광 이 멀리 한산에서 은거(隱居)하시면서 무슨 연유에서인지 알 수 가 없으나 경기도 고양군 벽제면 내유리에 있던 공과 공의 아버지 묘소가 실전(失傳)되어 자손들이 회한(海恨)이 깊었다. 그 후 공과 공의 아버지 호조판서 박임익(朴林益)의 사단(祀壇)이 경기도 고양시와 충남 서천군 회양면 추동리 경수산, 두 곳에 설단(設壇)되어 후손들이 단향으로 봉사(奉祀)하고 있다.

지금 고양시 벽제면 내유동에는 고양대군 13세 박덕생(朴德生;파조의 조부)의 묘소와 배위 정부인(貞夫人) 덕양택주(德陽宅主) 김씨의 사단(祀壇)이 있다.

참의공파 문중에서는 층남 서천 화양면 경수산에 선조의 제단과 비석을 세워서 실전된 분들을 한곳으로 모시는 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

 

참의공파종중의 역대 인물

면천군수(河川郡守) 사재공(士齋公) 박세광(朴世光)

박세광(世光)은 면천군수(沔川郡守)를 지내고 이조참의(吏曹參議)를 증직(贈職)받았다. 목은 이색(牧隱 李穡) 선생의 현손(玄孫)인 이서(李㥠)의 사위이며 대사간 이윤번(李允蕃)과는 남매지간(男妹之間)이다.

연산군 갑자사화에 처남인 대사간 이윤번이 투옥되고 우리 고령인으로 홍문관 수찬 경연검 토지제교를 현직하고 있던 휘 박은(朴間 취헌공)께서 대사간 이윤번을 대신하여 화(禍)를 입자 공(公)은 벼슬을 버리고 한산(韓山)의 처가가 있는 곳으로 낙향하여 은둔생활을 하시면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그는 청렴(淸廉)한 목민관(牧民官)으로 군수직을 맡아 낙향(落鄕)함에 고을 사람들이 안타깝게 여겨 비(碑)를 세워 공적을 송덕(碩德)하였다.

이후로 후손들의 일부는 경기도 화성 송림리에 이주하여 세거하고 있으며 한산, 화양, 마산, 기산 등지에 산재하여 집성촌을 이루고 있댜 임진왜란 시 피난비결은 소나무 송자가 들어간 지명이라고 하여 이곳 송산을 중심으로 세거하게 되었다는 말이 전해 온다. 공의 묘소는 경기도 화성군 화양면 옥동리 표동 경수산에 있다.

수졸헌공(守拙軒公) 박요신(朴堯臣)

공의 휘(諱)는 요신(堯臣)이고 호(號)는 수졸헌(守拙軒)이다. 조선조 연산군 갑자년(1504년)에 출생하셨으며 천성이 온아(溫雅)하시고 효도와 공경으로 행신을 갖추셨고 성현의 학문을 깊이 탐구하셨다.

아버지는 현령(縣令)과 사평(司評)을 지내셨고 조부인 휘 세광(世光)은 이조참의를 증직 받고 군수를 역임하였다. 수졸헌공의 증조부가 바로 참의공파의 파조이신 諱 제순(悌順)이다.

수졸헌공께서는 예빈시 참봉(禮賓寺參奉)을 하시다가 중종 임금 때 기묘사화가 일어난 후 사기저상(士氣沮喪)하여 벼슬에 나아갈 뜻을 접으시고 경학(經學)에 깊이 심취하셨다. 산림(山林)에 한거(閑居)하시고 마냥 일광산(日光山)에 오르시며 은거(隱居)하셨다.

일광산에는 목은 이색(牧隱 李稙) 선생의 독서대 유허지(讀書臺 遺虛地)가 있으며 산모양이 햇빛이 길게 비춰 온누리를 밝히는 것과 (日光長照光明天下)같다하여 일광산(日光山)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더러 감투같이 생긴 산이라고 하여 감투산(監套山)이라고도 불리기도 한 이 산은 한산팔경(韓山八景)중에 제일의 명소로 꼽힌다.

공(公)이 바로 이산에 안장되어 있는데 지리풍수설에 의하면 염정무곡성(炎貞武曲星)이 어우러진 산으로 일광대 꼭대기에 늙은 장수가 앉아 있는 형상인데 복(福)있는 사람이 이를 만났으니 봄바람 길게 불어 만년의 가지(日光臺上 老將端坐 福人逢吉地 春風吹長 萬年枝) 즉, 자손만대 의 번영이 영원하리라는 해석이다.

신령스러운 지초(芝草)와 단술 같은 샘물의 뿌리와 근원이 이에 시작되어 공의 음덕(薩德)은 길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니 자손들은 유구하게 창성(昌盛)할 것이다.

 

고령박씨 참의공파 집성촌

참의공파종중의 입향지(入鄕地) - 층남 서천군과 경기 화성시 남양

참의공파가 서천과 남양에 입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500여년 전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박세광 선조가 낙향하여 처가인 한산에 은둔한 것이 시초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사재공 박세광의 아들 수강(秀崗)과 수동(秀東)이 경기 남양과 충남 서천으로 갈라져서 정착하면서 이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서천군(한산, 마서, 화양면 등)

서천은 우리나라 서해 중심에 자리하고 있으며 충청남도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서천의 북서쪽은 차령산맥이 충남의 중앙을 남서 방향으로 뻗어내려, 서천군 서면 중앙부에 이르러 그 세력을 다하고, 해발고도 100m 이하의 낮은 구릉과 분지를 형성한 서면일대와 우리나라 4대강 중의 하나인 금강이 서천의 동남쪽 금강하구에 이르러, 비옥한 옥토를 기름지게 하는 풍부한 수자원과 함께, 충적평야를 형성, 내포(內浦)평야와 호남평야가 연결되는 광활한 옥토가 있으며, 서천의 서쪽과 남쪽의 해안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갯벌과 모래사장이 발달된 지형적 특징을 고려 삼은(三隱)의 한사람이며 성리학의 대가인 목은 이색(李穡)을 비롯, 종교가로서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월남 이상재 선생 등 역사적 인물을 많이 배출한 충질의 고장이다. 또한 백제의 군사 경제 요충지였던 기벌포(장항의 옛 지명)문화권인 서천지역은 150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면면히 이어져 오는 백제의 향기가 있다. 서천 특산품으로 유명한 한산 세모시와 한산 소곡주, 보물224호로 지정된 비인오층석탑과 충남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된 저산팔읍길쌈놀이는 백제 때부터 이 어온 서천지역 고유의 대표적 생활문화로 지역민은 물론 서천을 찾 는방문객들이 향유하는 전통문화이다.

국내 유일의 전통 섬유 축제인 한산모시문화제를 비롯한 홍원항 전어 큰 잔치, 동백꽃·주꾸미축제, 마량포 해돋이축제 등이 계절별로 개최되고 있으며 철새의 낙원인 금강하구독, 영화 JSA(공동경비구역)의 촬영지로 소개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신성리 갈대밭, 바다의 생명인 갯벌과 완만한 경사면과 아카시아와 해송림이 우거진 춘장대해수욕장 등 연인과 가족의 휴양지로, 갯벌 체험을 중심으로 농촌생활 체험 등 체험관광지로 다양한 테마관광이 군내에 활성화 되 고 있어 전국 각지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화성(華域)은 1794년(정조 18년) 정조가 수원부 읍치와 현륭원을 위호할 성곽의 터를 둘러보면 서 장자(莊子)의 화인축성(華人祝聖)이라는 고사를 생각하며 화성(華城)이라 붙인 이름이다. 즉, 고사가 강조하는 바는 부(富)나 장수(長壽, 多子) 등 세상의 바람을 여민동락(與民同樂) 한다는 것임. 따라서 화성이라 칭한 것은 이 땅을 풍요(豐饒)의 고을이 되라는 뜻으로 이해 할 수 있다.

화성시의 지세는 크게 강원도 북부에서 남남서로 달리는 광주산맥과 그 남쪽 차령산맥 사이의 서쪽 종부위에 위치하며 동북쪽으로 비교적 산세가 깊은 산지를 형성하고 중앙은 낮은 산성의 구릉지대를 서쪽으로는 낮은 평야지대를 이루면서 서해로 빠져들고 있어 본시는 전체적으로 경기 서부 해안지대의 저평한 평야지대에 포함되고 있는데 남양반도와 조암반도가 서해안을 향해 돌 출된 반면 황구지천, 발안천이 평택항으로 깊숙이 관입하여 이곳 평야지대를 촉촉이 적셔주고 있다.

 

고령박씨 참의공파 종중을 이끄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