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평당서씨시조(平當徐氏),서준방(徐俊邦)

작성일 : 2018-05-02 11:34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평당서씨(平當徐氏)의 시조(始祖) 서준방(徐俊邦)은 이천 서씨(利川徐氏)의 시조 서신일(徐神逸)의 후손으로 고려조에서 형부상서(刑部尙書)를 지내고 외적(外敵)을 격퇴시키는데 공(功)을 세워 봉성군(峯城君)에 봉해졌으며, 그의 아들 약진(若珍)과 손자 숭조(崇祖)에 이르기까지 3대가 봉성군에 봉해짐으로서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평당(平當)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평당(平當)은 경기도(京畿道) 북서부에 위치한 파주(坡州)의 옛 지명으로 신라시대(新羅時代)에 봉성현(峰城縣)이라 하였으며, 고려(高麗) 때 서원현(瑞原縣)으로 개칭하였고 조선(朝鮮) 때 원평군(原平郡)으로 고쳤다가 그 후 여러 차례 변천을 거쳐 파주군(坡州郡)이 되었다.

그러나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와 「동국만성보(東國萬姓譜)」에 의하면 시조 준방(俊邦)은 서신일의 5세손으로 이천 서씨에서 분족(分籍)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동원(同源)으로 알려진 봉성서씨(峰城徐氏)는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벼슬을 역임한 서극후(徐克後)의 후손으로 전한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을 역임한 숭조(崇祖)의 아들 령(苓 : 시조의 증손)이 승지(承旨)을 지냈으며, 7세손 원경(元敬)은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여 가세(家勢)를 일으켰다.

조선조에 와서는 정랑(正郞)을 지낸 인기(仁奇 : 8세손)와 목사(牧使) 신(信)의 부자(父子)가 유명했고, 극일(克一)은 정언(正言)을 역임하여 군수(郡守) 구(矩),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수(綬), 교리(校理) 륜(倫) 등과 함께 평당서씨를 대표했다.


인 구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평당서씨는 남한에 총 56가구, 25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는 78가구 237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