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안산이씨시조(安山李氏),이희적(李希勣),안산이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8-04-03 11:59 수정일 : 2018-07-16 16:32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안산이씨(安山李氏)의 시조(始祖)는 1231년(고종 18) 몽고(蒙古) 원수 살리타이(撒禮塔)가 군사를 거느리고 함신진(咸新鎭)을 거쳐 철주성(鐵州城)을 침략할 때, 판관(判官)으로 성(城)을 지키다가 순절(殉節)한 용장(勇壯) 이희적(李希勣)으로 그 후손들이 누대(累代)에 걸쳐 안산(安山)에서 정착 세거(定着世居)하면서 본관(本貫)을 안산(安山)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안산(安山)은 경기도 시흥군(始興郡) 수암면(秀岩面)․ 군자면(君子面) 및 화성군(華城郡) 반월면(半月面) 일부지역을 관장하였던 고려시대의 행정구역명이다.본래 고구려의 장구현(摬口縣 : 古斯也忽次)을 통일신라 때 군(郡)으로 승격하였고 고려에서 안산군으로 개칭하였다.

1913년 군(郡)을 없애고 월곡면(月谷面)․배방면(北方面)․ 성곶면(聲串面)은 수원에 속하고 나머지 일원(一圓)은 시흥군(始興郡)에 병합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희적(希勣)의 7세손 보림(寶林)이 지제고(知制誥)를 지냈으며, 그의 아들 익룡(翼龍)은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역임하여, 정언(正言)을 지낸 경흠(敬欽)과 함께 명망높은 가문으로 이르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 외 판관(判官)을 지낸 후적(厚績)과 부정(副正)을 역임한 인석(仁碩), 참판(參判)을 지낸 난중(蘭仲)은 가문(家門)을 더욱 빛냈고, 화가로 이름난 의양(義養)은 특히 산수화(山水畵)에 능하여「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와「강남우후도(江南雨後圖)」를 남겼다.군수(郡守)를 지낸 한철(漢喆)은 아버지 의양(義養)의 대를 이어 산수(山水)․ 화조(花鳥)․ 인물(人物) 등 그림에 능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안산이씨는 전국에 3,26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안산이씨조상인물

이보림(李寶林): 고려 때 지제고(知制誥)를 역임하였다.

이익룡(李翼龍): 고려 때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이르렀다.

이경흠(李敬欽) : 조선에서 정언(正言)을 지냈다.

이후적(李厚績) : 조선조(朝鮮朝)에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이봉형(李奉亨): 조선(朝鮮)때 판관(判官)을 역임했다.

이인석(李仁碩): 조선 때 부정(副正)을 지냈다.

이난경(李蘭慶): 조선에서 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이이식(李而植): 조선에서 교위(校尉)를 지냈다.

이난중(李蘭仲) : 조선(朝鮮) 때 참판(參判)을 역임하였다.

이용복(李龍福): 조선 때 부정(副正)을 역임하였다.

이백용(李白龍) : 조선조(朝鮮朝)에 수문장(守門將)을 지냈다.

이광선(李光善): 조선 때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이의양(李義義): 1768(영조 44)-?. 자(字)는 이신(爾信), 호(號)는 운재(雲齋) · 팔송관(八松觀). 조선의 화가로 그림에 능하여 산수화(山水畵)를 많이 그렸다. 「고화비고(古畵備考)」에 산수화,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제 14권에 〈강남우후도(江南雨後圖>가 수록되어 있다.

이한철(李淨喆): 1812(순조 12) ? 자(字)는 자상(子常), 호(號)는 희원(希園 . 喜園) · 송석(松石), 의양(義養)의 아들. 벼슬은 군수(郡守)를 지냈고, 화가로서 산수(山水) · 화조(花烏) · 인물(人物)을 잘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