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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조씨] 조덕립(趙德立)
자(字)는 입경(立卿). 조선조(朝鮮朝)에 공조(工曹) 좌랑(佐郞)을 역임했다.
[칠원제씨] 제말(諸 沫)
1544년 중종39)~1592(선조 25). 시호(諡號)는 충장(忠壯). 고성(固城) 출신. 제조겸의 5자(子) 체구가 크고 팔이 길어 영웅호걸의 기상으로 힘이 세고 수염이 무성해 성을 내면 뻣뻣이 하늘로 치솟고 그 가 싸울 때는 마치 우레(雨雷)가 기둥을 깨뜨리고 바람이 강물을 요동하듯 천지가 진동하였음으로 적병이 감히 대항하지 못하고 그를 나는(飛) 장...
[영일정씨] 정종성(鄭宗誠)
조선 때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를 역임하였다.
[영일정씨] 정종소(鄭從韶)
자(字)는 사정(司貞), 호(號)는 정헌(靖軒). 1447년(세종 29) 문과(文科)에 급제한 후 성균관 사성(成均館司成)에 올랐으나 병자사화(丙子士禍) 이후 벼슬에서 물러나 향리(鄕里)에서 은거(隱居)했다. 공주(公州)의 동학사(東鶴寺) 숙모전(肅慕殿)에 배향되었다.
[영일정씨] 정보(鄭 保)
호(號)는 설곡(雪谷), 몽주(夢周)의 손자, 종성(宗誠)의 아들. 학문에 뛰어나 세종(世宗)의 총애를 받았으며,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과 친교가 있었고, 벼슬은 감찰(監察)에 이르렀다.
1456년(세조 2) 사육신(死六臣) 사건이 일어나자, 그들의 무죄를 주장한 말이 세조(世祖)에게 알려져 처형의 명이 내려졌으나, 정몽주의 손자임이 밝혀져 ...
[영일정씨] 정지충(鄭智忠)
호(號)는 도암(道菴). 조선(朝鮮) 때 우의정(右議政)에 추증(追贈)되었다.
[영일정씨] 정세건(鄭世健)
조선에서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지내고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추증되었다.
[영일정씨] 정세필(鄭世弼)
호(號)는 임헌(林軒). 조선조에 좌도 병마절도사(左道兵馬節度使)를 지냈다.
[영일정씨] 정세안(鄭世安)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영일정씨] 정유번(鄭維藩)
조선(朝鮮)에서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을 지냈다.
[영일정씨] 정유한(鄭維翰)
조선(朝鮮) 때 이조 참의(吏曹參議)를 역임하였다.
[영일정씨] 정신도(鄭信道)
조선조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영일정씨] 정두형(鄭斗亨)
자(字)는 천장(天章), 호(號)는 낙전당(樂全堂), 참봉(參奉) 충원(忠元)의 아들. 1544년(중종 39) 생원(生員)으로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검열(檢閱)을 거쳐 승지(承旨)에 이르렀다. 효행(孝行)으로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영일정씨] 정세아(鄭世雅)
?~1612(광해군 4) 자(字)는 화숙(和叔), 호(號)는 호수(湖叟), 시호(諡號)는 강의(剛義), 윤량(允良)의 아들. 1558년(명종 13)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義兵)을 규합, 대장이 되어 영천(永川)의 적을 격퇴, 이듬해 서울이 수복되자 군사를 조희익(曺希益)에게 맡기고 자양(紫陽)에 돌아갔다....
[영일정씨] 정의번(鄭宜藩)
?~1592(선조 25) 자(字)는 위보(衛甫), 호(號)는 백암(栢巖), 세아(世雅)의 아들. 1585년(선조 18)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부친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영천(永川)에서 승리, 이어 경주(慶州)에 진격하여 싸우다가 적에게 포위당해 위기에 빠진 아버지를 구출, 혈 전을 벌이다 전사했다. 영조(英祖) 때 좌승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