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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이씨] 이승복(李承福)
(1960~1968). 1968년 12월 9일 울진(蔚珍) 삼척(三陟) 무장공비 출현으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를 외치다가 순국(殉國)하였다. 1982년에 정부(政府)에서 이승복 생가(生家) 부근 3만평 부지에 이승복기념관(李承福紀念館)을 건립, 국민정신교육(國民精神敎育)의 장(場)이 되고 있다.
[평창이씨] 이시담(李時橝)
1654년(효종 5) 문과(文科)에 급제한 후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평창이씨] 이희명(李希明)
자(字)는 언회(彦晦). 조선(朝鮮) 때 도호부사(都護府事)를 역임하였다.
[평창이씨] 이희문(李希文)
조선(朝鮮) 때 현감(縣監)을 지냈다.
[평창이씨] 이양(李 瀁)
조선 때 사예(司藝)를 역임했다.
[평창이씨] 이광직(李光溭)
조선시대에 참판(參判)에 올랐다.
[평창이씨] 이광익(李光瀷)
조선조(朝鮮朝)에 참의(參議)에 이르렀다.
[평창이씨] 이인변(李仁釆)
조선 때 지평(持平)을 지냈다.
[평창이씨] 이유(李 愈)
자(字)는 숙겸(叔謙). 조선 때 우윤(右尹)을 역임하였다.
[평창이씨] 이상휘(李祥휘)
1696년(숙종 22) 문과에 급제한 후 예조 좌랑(禮曹佐郞)을 역임하였다.
[평창이씨] 이광부(李光簿)
1694년(숙종 20)~1773년(영조 49) 자(字)는 자연(子淵). 1715년(숙종 41) 문과에 급제한 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이르렀고 1766년(영조 42)에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1798년(정조 22)에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다.
[평창이씨] 이동욱(李東郁)
1739(영조 15) ~ ? 자(字)는 유문(幼文), 호(號)는 소암(蘇巖), 광직(光溭)의 아들. 1766년(영조 42)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兵科)로 급제, 1783년(정조 7) 사은 겸 동지사(謝恩兼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갈 때 아들 승훈(承薰)을 동반, 북경(北京)에 들어가 천주교회 북당(北堂)에서 최초로 영세(領洗)를 받게 했...
[평창이씨] 이승훈(李承薰)
1756(영조 32)~1801(순조 1) 교명은 베드로, 참판(參判) 동욱(東郁)의 아들, 가환(家煥)의 생질, 정약용(丁若鏞)의 매부. 1780년(정조 4) 진사지(進士試)에 합격했으나 벼슬을 단념, 학문에 전심하다가 천주교인 이 벽(李 蘗)을 만나 입교(入敎)를 결심. 1783년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인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에 가서 북경 남천...
[평창이씨] 이치훈(李致薰)
1765년(영조 41)~1822년(순조 22) 자(字)는 자화(子和), 승훈(承薰)의 아우. 1792년(정조 16)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형 이승훈(李承薰)이 1801년(순조 1) 신유대사옥(辛酉大邪獄)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당할 즈음에 상소하여 사면을 호소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자 낙향하여 은거생활을 했다.
[평창이씨] 이무엽(李茂葉)
1782년(정조 6)~1860년(철종 11) 자(字)는 감숙(監叔). 효행(孝行)이 지극하여 어사(御史) 이기계(李夔癸)에 의해 저정에 천거되어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고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증직(贈職)도었으며 정려(旌閭)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