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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나씨] 나덕헌(羅德憲)
자(字)는 헌지(憲之), 호(號)는 장암(將岩), 시호(諡號)는 충렬(忠烈).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부안 현감(扶安懸監)을 지내고 의주 판관(義州判官), 길주(吉州)․정주 목사(定州牧使), 창성 부사(昌城府使)․의주부윤(義州府尹)을 역임 하였다.
1624년(인조 2) 안현(鞍峴)에서 이 괄 (李 适)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나주나씨] 나성진(羅星軫)
조선 때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나주나씨] 나재흥(羅再興)
호(號)는 호산(湖散).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충청도 병마우후(忠靑道兵馬虞候)를 역임하고 병조 참의(兵曹參議)에 추증되었다.
[나주나씨] 나이례(羅以禮)
조선에서 선전관(宣傳官)을 지냈다.
[나주나씨] 나윤소(羅允素)
조선조(朝鮮朝)에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역임하였다.
[나주나씨] 나계소(羅繼素)
조선 때 군수(郡守)를 지냈다.
[나주나씨] 나위소(羅緯素)
1583 (선조 16) ~ 1667 (현종 8) 자(字)는 계빈(季彬), 현감(縣監) 덕준(德峻)의 아들. 1616년(광해군 8) 생원(生員)이 되고, 1623년(인조 1) 개시문과(改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형조 좌랑(刑曹佐郞)을 지낸 후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옥과 현감(玉果縣監)으로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을 도와 군량...
[나주나씨] 나회소(羅繪素)
조선(朝鮮) 때 부사(府事)를지냈다.
[나주나씨] 나의소(羅宜素)
조선조에서 예조 정랑(禮曹正郞)을 역임하였다.
[나주나씨] 나학소(羅鶴素)
조선 때 예조 좌랑(禮曹佐 郞)을 지냈다.
[나주나씨] 나중소(羅仲昭)
호(號)는 포석(抛石). 경기도출신. 구한말 진위대 부위(鎭衛隊副尉)를 지내다가 한일합방 후에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 1919년 김좌진(金佐鎭), 서 일(徐 一), 현천묵(玄天黙) 등과 길림성 왕청현(吉林省汪淸縣)에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를 창설 하여 참모장이 되었으며, 독립군의 양성을 위해 사관양성소를 설치했다.
이듬해 참모장으로서 대장(隊長...
[나주나씨] 나창헌(羅昌憲)
희천(熙川) 출신. 한일합방 후 독립운동에 투신, 1919년 청년외교단원(靑年外交團員) 및 대동단원(大同團員)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3년간 복역했다.
출옥 후 상해(上海)에 건너가서 1922년한국 노병회(韓國勞兵會)의 이사(理事)․교육부원(敎育部員), 1924년에는 학무 위원․교민단의 사원(僑民團議事員), 1925년 임시대통령 이승만(李承晩) 탄핵안 제안...
[나주나씨] 나정귀(羅正龜)
평북 태천(泰川) 출신. 3․1운동 후 만주로 망명, 관전현(寬甸縣)에서독립단(獨立團) 토벌대장이 되어 활약했다.그 뒤 백세창(白世昌)과 일본의 앞잡이 보민회(保民會)를 습격하다가 체포되어 본국에 압송, 서울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 병사했다.
[나주나씨] 나종길(羅鍾吉)
1919년 3․1 운동 때 전남(全南) 광양(光陽)에서 민중의 선봉(先鋒)이 되어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뤘다.
그 공은 선양하고 후진의 애국심(愛國心) 교화(敎化)의 상징으로 광양군(光陽郡) 일곱 의사(義士)의 3․1 운동 기념비(紀念碑)가 광양(光陽)에 세워졌다.
[나주나씨] 나학도(羅學道)
평남 순천(順川)에서 상무사(商務社) 사장으로 있다가 1909년(융희 3)일본 재무서(財務署)에서 시장세(市場稅)를 징수하자 최봉환(崔鳳煥)과 의논, 상민회(商民會)를 조직하고 그 회장이 되어 철시(撤市) 등으로 세금의 납부 반대운동을 벌였다.
이듬해 1월 강제로 세금을 징수하려는 일본 재무서원과 충돌, 상민회 회원을 인솔하고 무력으로 항쟁하다 폭동․방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