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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나씨] 나석(羅 碩)
고려조(高麗朝)에 통사랑(通仕郞)으로 사온서 직장(司醞署直長)을 거쳐 여러 관직을 역임하며 나라에 공(功)을 세워 금양군(錦陽君)에 봉해졌다. 금양군파(錦陽君派)의 파조(派祖).
[나주나씨] 나세(羅 世)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문과(文科)에 급제, 한림(翰林)을 거쳐 원수(元帥)에 올라 북으로부터 내침한 홍건적(紅巾賊)을 토벌하는데 공(功)을 세워 2등공신(二等功臣)에 책록되었고, 상원수(上元帥)가 되어 수차에 걸친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치는데 공헌하여 연안군(延安君)에 봉해지고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이르렀다. 연안군파(延安君派)의 파조(派祖).
[나주나씨] 나원(羅 源)
고려 때 통사랑(通仕郞)으로사온서 직장(司醞署直長)을 지내다가 정국(政局)이 혼란(混亂)하자 나주(羅州)로 은거(隱居)하였다. 직장공파(直長公派)의 파조(派祖).
[나주나씨] 나동길(羅東吉)
고려(高麗) 대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의 파조(派祖).
[나주나씨] 나중우(羅仲佑)
호(號) 낙천와(樂天窩). 1362년(공민왕 11)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이어 문과(文科)에 급제, 중정대부(中正大夫)로 전교시령(典校侍令) 겸 춘추관 편수관(春秋舘編修官)을 거쳐 예문관 지제고(藝文舘知制誥)를 역임하였다.
[나주나씨] 나명우(羅明佑)
조선에서 현령(懸令)을 지내고, 정종조(定宗朝)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弘文舘校理)를 거쳐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역임하였다.
[나주나씨] 나진(羅 璡)
고려말(高麗末)에 가선대부(嘉善大夫)로 공조 전서(工曹典書)를 지내고, 고려(高麗)가 망하고 조선(朝鮮)이 개국(開國)한 후 호조 전서(戶曹典書)에 임명되었으나 절의(節義)를 지켜 불취(不就)하고 나주(羅州)에 은거하였다.
[나주나씨] 나신(羅 紳)
조선(朝鮮) 때 문과(文科)에급제하여 세마(洗馬)를 거쳐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역임하였다.
[나주나씨] 나진강(羅晋康)
조선조에 통훈대부(通訓大夫)로 해남 현감(海南懸監)을 역임하였다.
[나주나씨] 나치강(羅致康)
조선 때 장성(長城)과 곡성현감(谷城懸監)을 지내며 선정(善政)을 베풀어 백성(百姓)들이 선정비(善政碑)를 세웠다.
[나주나씨] 나득강(羅得康)
자(字)는 경천(敬天). 1419년(세종 1) 문과(文科)에 급제, 녹사(錄事)․직장(直長)․박사(博士)를 거쳐 선천(宣川)등지의 현령(懸令)을 역임한 후 이조 좌랑(吏曹佐郞)을 지냈다. 뒤에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이조 판서(吏曹判書)겸 세자시강원 찬선(世子侍講院贊善)에 이르렀다.
[나주나씨] 나준(羅 俊)
1421년(세종 3) 문과(文科)에 급제,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를 지내고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추증되었다.
[나주나씨] 나공언(羅公彦)
자(字)는 중현(仲賢), 호(號)는 화헌, 공조 전서(工曹典書) 진의 아들. 조선(朝鮮)에서 중현대부(中顯大夫)로 전농시정(典農寺正)을 역임하고 나라에 공(功)을 세워 나성군(羅城君)에 봉해졌다.
[나주나씨] 나사고(羅師古)
1441년(세종 23) 문과(文科)에 급제, 홍문관 수찬(弘文館修撰)을 거쳐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과 형조 판서(刑曹判書)를 역임하였다.
[나주나씨] 나희로(羅希老)
조선 때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사포시 별제(司圃侍別提)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