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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손씨] 손석윤(孫錫胤)
사헌부 지평, 병자호란 때 창의 하였고 충효정려를 받았다.
[밀양손씨] 손상억(孫尙億)
자(字) 화중(和中) 가선대부로 행용양위부호군 겸 한성판윤을 지냈다.
[밀양손씨] 손기윤(孫起胤)
(1605-1672) 자(字) 자승(子承) 현종때에 가선대부 이조참의를 역임했다.
[밀양손씨] 손여양(孫汝揚)
(1572-1632) 자(字) 중술(仲述) 인조 때에 통정대부 어모장군으로 행훈련원주부를 지 냈다.
[밀양손씨] 손상융(孫尙隆)
자(字) 덕미(德美), 호(號) 야옹(野翁) 숙종 때에 부사과(副司果)에서 용양위부호군 절충장군을 지냈다.
[밀양손씨] 손흥적(孫弘韻)
(1510-1549) 자(字) 언선(彦善), 호(號) 도봉(道峰) 중종 5년 경오에 출생하여 명종 4년 을사사화의 필화로 위원(淸原)의 적소(議所)에서 졸(卒)하였다. 중종 35년에 진사가 되고, 38년 9월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과 국제한림(國制翰林)을 지냈다.
[밀양손씨] 손홍록(孫弘祿)
임진왜란 때 오의(吳義)와 더불어 전주 사고의 왕조실록과 태조대왕 영정을 정읍 내장산으로 옮겨 보존하여 우리 문화사에 큰 공을 남겼다. 선조로부터 지평의 벼슬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향리에서 평생을 마쳤다.
[밀양손씨] 손승경(孫承憬)
임진왜란 때 당숙 손홍록을 따라 왕조실록 과 태조 영정을 보관하고 금산의 전투에서 조중봉(趙重峰)과 함께 전사하였다.
[밀양손씨] 손익(孫 翼)
명종때 강진현감을 거쳐 우후(處候)를 지냈다.
[밀양손씨] 손응지(孫應智)
주부(主簿)로서 임진왜란에 목사(牧使) 남유(南瑞)와 더불어 관음포(觀音浦)에서 싸우다가 남유가 적탄을 맞아 전사하자 대장(代將)으로 맞아 싸워 큰 공을 세웠다.수사(水使)에 증직 되었다.
[밀양손씨] 손홍립(孫興立)
수사(水使) 손응지 장남. 임진왜란 때 왕을 행재소(行在所)까지 호종하여 원종공신이 되었고 첨정(僉正)을 지냈다.
[밀양손씨] 손실(孫 實)
(1608-1671) 자(字) 약허(若虛), 호(號) 손곡(遜谷) 무과에 급제 병자호란 때에 선봉장이 되어 용인 광교산 전투에 서 적을 대파 큰 공을 세웠다.
[밀양손씨] 손창린(孫昌麟)
(1796-1851) 자(字) 성로(聖魯) 헌종 때에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중추부사 오위도총 부부총관을 지냈다.
[밀양손씨] 손병직(孫秉直)
(1823-1890) 자(字) 일여(一如) 고종 때에 오위장(五衛將)으로 가선대부 행용양위부호군을 지냈다.
[밀양손씨] 손초상(孫楚相)
(1711~1777) 자(字) 여현(汝賢) 정3품 통정대부로 행용양위부호군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