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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손씨] 손책(孫 策)
고려말에 문과에 급제. 수주목사(樹州牧使, 현 富平)를 지냈는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이에 불복하여 처형되었다. 그의 처 원주이씨가 호남으로 피난하여 내려와 장남 검경(儉敬)은 나주에, 차남 유경(有敬)은 보성에. 삼남 계경(季敬)은 정읍에 세거 하였다.
[밀양손씨] 손속재(孫淑才)
자(字) 사예(士藝). 호(號) 숙재(淑齋). 국자진사(國子進士)
[밀양손씨] 손언(孫 彦)
고려 우왕 때 밀직부사(密直副事)를 지냈다. (高麗史)
[밀양손씨] 손수경(孫守卿)
고려 충숙왕 때 첨의부 참리로 임명되고, 충숙왕 8년에 대호군이 되었으며, 충혜왕이 원나라에 피략 되었을 때에 호종한 공로로 일등공신의 녹공(錄功)을 받고, 충목왕 원년에 정2품 문하성 찬성사에 오르고, 충정왕 원년에 선력익대정원공신 판삼사사가 되고, 좌정승에 올라 의창부원군(義昌府院君)에 봉해졌다. (高麗史 高麗史節要)
[밀양손씨] 손윤주(孫允柱)
고려에서 오위(五衛)의 상호군(上護軍)을 지냈다.
[밀양손씨] 손효정(孫孝貞)
자(字) 양지(養誌) 호(號) 남은(南隱) 우왕 11년 을축에 문과에 급제하고, 정3품 중정대부 삼사좌윤(三司左尹)을 지냈다.
[밀양손씨] 손을봉(孫乙逢)
사명(賜名) 을봉(乙逢) 봉(封) 봉성군 (鳳城君) 조선 태조 7년 무인에 병조참판을 지 냈다.
[밀양손씨] 손서륜(孫敍倫)
자(字)는 돈중(敦中) 세종 때 문과에 급제 하여 집현전의 성삼문 등과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단종의 복위를 위하여 이보흠과 의거를 하려다가 실패하여 처형되었다.
[밀양손씨] 손태좌(孫台佐)
호(號) 학음(鶴陰) 조선 중중조에 현감(縣監) 손순(孫順)의 25세손이며 대종가(大宗家)의 주손(胄孫)으로서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전적(典籍)을 거쳐 외재(外宰)로 현감(縣監)을 지내고 봉천사(鳳泉寺) 등에 세평(世評)에 관한 유시(遺詩)를 남겼다.
[밀양손씨] 손인갑(孫仁甲)
자(字) 원백(元伯), 호(號) 후지당(後知堂) 조선 중종조에 무과에 급제 후 북보만호(北堡萬戶)를 거쳐 무국만침사로 가덕진첨절제사를 지냈으며 선조 임진왜란 때는 의병을 규합 경상도관찰사 막하에 들어가 의병장으로 우지령(牛旨嶺)에서 왜적을 격파하고, 마진전투에서 전사하여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밀양의 충효사에 모셔졌다.
[밀양손씨] 손비장(孫比長)
자(字) 영숙(永叔), 호(號) 입암(笠巖) 세조 9년에 온양별시(溫陽別試) 문과 을과에 급제하고 성종 7년에 문과중시갑과에 합격하여 예문관 직제학과 홍문관 부제학을 지냈으며, 승정원 승지 이조참의와 대사성 사간원 대사간과 경연 참찬관 겸 상호군이 되고, 서거정 등과 함께 동국통감을 찬진하고, 공조참의와 장예원(掌隸院) 판결사를 지냈다.
[밀양손씨] 손상장(孫尙長)
자(字) 유구(j慈久), 호(號) 이암(頤菴) 진사(進士)로 있다가 성종 2년 신묘에 문과에 오른 이래 경산현령(慶山縣令)을 거쳐 가산군수(嘉山郡守)와 양산군수(梁山君守) 통례원 상례 (通禮院 相禮)를 지냈다.
[밀양손씨] 손세응(孫世雍)
( 1464 1526) 자(字) 시경(時卿), 호(號) 용강(龍岡) 연산군 원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교서관부정(校書館 副正)으로 임관 후 누진하여 한산군수와 사간원 대사간을 지냈다.
[밀양손씨] 손수산(孫壽山)
부과에 급제. 훈련원 첨정을 지냈다.
[밀양손씨] 손집경(孫執經)
성종 11년 문과에 오른 이후 누진하여 성균관 대사성 교리 박사(校理 博士)에 오르고 예조판서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