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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시흥강씨(衿川․始興姜氏),금천강씨시조,강여청(姜餘淸),금천시흥강씨조상인물
금천․시흥강씨(衿川․始興姜氏)
강성(姜姓)의 연원(淵源)
강(姜)이라는 성(姓)을 갖게된 유래(由來)는 삼황(三皇)의 한 분인 염제(炎帝) 신농(神農)으로부터 始作되었다. 사미천이 쓴 사기(史記)에 의하면 염제의 부(父)는 소전(小典) 부락 군주(君主)요(少典部落君主). 어머니는 제후(諸侯) 유교(有嬌)씨의 딸(女)로 이름은 규임기(叫任己) 또는 안등(...
진주강씨,진주강씨시조,진주강씨조상인물,강이식
진주(晋州)는 경상남도(慶尙南道) 남서쪽에 위치한 영남(嶺南)의 고도(古道)로서 백제(百濟)때에는 거열성(居烈城)으로 불리우다가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 : 제30대 임금, 재위기간 : 661~681) 때 신라 영토가 되어 거열주(居烈州)라고 하였다.
그후 서기 757년(신라 경덕왕 16) 9주 5소경제(九州五小京制: 통일신라 때 전국의 행정구역을 9주...
신천강씨,신천강씨시조,강호경,신천강씨유래,신천강씨조상인물
신천강씨시조 및 신천강씨유래
강씨(康氏)의 연원(淵源)은 중국(中國) 경조(京兆: 섬서성 남부 장안현 부근 일대를 차지하는 행정구역) 출신 인 주(周)나라 왕족(王族) 강숙(康 叔)이다.
우리나라 강씨 (康氏)의 연원(淵源)은 강숙의 둘째 아들 강후(康侯) 의 68세손 강호경 (康虎景: 新羅의 聖骨將軍)을 시조(始祖)로 모시고 있다.
강씨 (康氏)의 ...
강음단씨시조(江陰段氏),단일하(段一河),강음단씨조상인물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단씨(段氏)는 본래 중국 경조(京兆: 협서성 관중도 장안현)에서 계출 (系出)된 성씨(姓氏)로 정장공(鄭莊公)의 아우 숙단(叔段)의 후손이 이름자인 단(段)을 성으로 삼은 것이 시초가 된다.
우리 나라 단씨(段氏)는 강음(江陰)과 연안(延安)을 비롯하여 대흥(大興), 풍덕(豊德), 청주(淸州), 고산(高山), 강릉(江陵) 등 19...
[전주김씨] 김이명(金以鳴)
조선 때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훈민정음
이 책은 새로 창제된 훈민정음을 왕의 명령으로 정인지 등 집현전 학사들이 중심이 되어 세종 28년(1446)에 만든 한문해설서이다. 책이름을 글자이름인 훈민정음과 똑같이 ‘훈민정음’이라고도 하고, 해례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 전권 33장 1책의 목...
제1회 씨알의 날 - 통일의 북소리
한국성씨문화지를 <뿌리와 미래>로 제호를 변경, 격월간 유가지로 발행하겠다는 약속이 예정보다 너무 늦어져 매우 송구합니다.
2019년 7월 17일 종중사무총장협의회 7월 월례회( 회원 중 (사) 한국뿌리문화보존회 정회원 90% 중복임)에서 논의 끝에 8월 월례회 겸 보존회 임시총회를 열어 거듭된 발행 연기 사유를 해소하였으나 그동안 잡지 발행을 위한 법...
[신천강씨] 강재산(康在山)
자는 산수(山叟), 호는 일죽(一竹). 조선 때 찰방(察訪)을 지냈다.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1942년 착수된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7호) 해체수리 공사시 나온 사리함에서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국보 제80호)과 함께 발견되었다. 사리함에 새겨진 글에 의하면 통일신라 성덕왕 5년(706)에 사리함 속에 순금으로 된 아미타상을 넣었다고 하는데 이 불상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러나 크기가 6치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불상은 12.2㎝로 4...
코페르니쿠스 보다 백년 앞서 지동설을 주장한 세계최고의 조선 과학자 이순지
코페르니쿠스 보다 백년 앞서 지동설을 주장한
세계최고의 조선 과학자 이순지
1444년 세계 최초 지동설 주장
• 月蝕(월식) 때 地球(지구)의 둥근 그림자를 보고 “地球(지구)는 둥글고 太陽(태양)의 周圍(주위)를 돈다” ·코페르니쿠스보다 100年前(년전) 主張(주장) [1543年(년) 코페르니쿠스 地動說(지...
[교하김씨] 김성구(金成九)
조선 때 전적(典 籍)을 지냈다.
[진보진성이씨] 이지순(李志淳)
(1762~1807) 字 穉和 號 省流亭. 군수
[평양조씨]수원 화성 건설의 주역 무의공 조심태
수원 화성 건설의 주역 무의공 조심태
수원의 역사
수원은 고구려 때는 매홀(買忽), 水成 그리고 水州로 불렸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조선조가 탄생하고 도읍이 한양으로 옮겨지자 수원은 한양의 남쪽 방어선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양을 방어하는 도시인 도호부로 되었다.
18세기 말에 와서 사도세자의 무덤(永祐園)을 수원읍의 주산인 花山아래로 옮기고...
[삼척김씨] 김치봉(金致鳳)
절충장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