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12-09 13:59
1700(정조 23)~1846(헌종 12) 교명(敎名)은 칼로로, 역관(譯官) 계흠(啓欽)의 아들, 1836년(헌종 2) 의주(義州)에 가서 프랑스 선교사 앵베르 주교를 맞아들였고, 그후 샤스땅 신부를 도와 전도에 힘써 천주교 한양회장(漢陽會長)에 임명되었다.
1839년(헌종 5) 기해박해(己亥迫害)로 아내와 누이가 순교, 앵베르 주교의 요청을 받아「조선천주교순교자열전(朝鮮天主敎殉敎者列傳)」의 집필에 착수했고, 이해 8월 앵베르․샤스땅․모방 등 세 신부마 저 잡혀 죽자 박해를 피해 다니며 낙망한 신자들을 위로,「순교자열전」의 편찬을 위하여 때로는 중국 상해(上海)까지 가서 자료를 정리, 3년만에「기해일기(己亥日記)」라는 이름으로 열전을 완성했다.
1845년(헌종 11) 김대건(金大建)과 함께 상해로 가서 조선 교구 제 3대 교구장으로 임명된 페레올 주교를 안내하고 입국, 다음해 9월 서울에서 피체, 김대건 등과 함께 새남터 형장에서 순교했다. 1925년 교황비오 11세에 의하여 복자위(福者位)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