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8년~1893년) 처음 이름은 허유(許維)이고 자는 마힐(摩詰)이고 호는 소치(小癡)이다. 1848년(헌종14) 무과에 합격하여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신묘한 재주를 지니어 해남 대흥사의 초의대선사(草衣大禪師)를 찾아가 인격과 학문을 수양하고 고산 윤선도(尹善道)의 후손인 녹우당 윤공재가(尹恭齋家)의 3대에 이르는 명화첩을 통하여 깊은 화법과 필법을 터득하고 초의선사의 천거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문하에 입문한 후 극치(極致)의 경지(境地)를 이루어 그 명성이 높아 1849년(헌종15)에는 헌종(憲宗)께 나아가 그림을 그렸으며 일생을 고고(孤高)한 선비정신으로 일관했다. 소치의 작품 중에는 손가락으로 그린 지두화(指頭畵)를 비롯하여 사군자(四君子), 노송도(老松圖), 괴석도(怪石圖) 등의 호방한 구성의 문기(文氣)있는 걸작들이 많다. 여기에 시(詩)․서(書)․화(畵)까지 능통하여 허소치 삼절(三絶)이라는 극찬의 호칭까지 얻었다. 당대의 명사들인 석파 대원군(大院君) 이하응, 민영익, 신관호 등과 교유하였으며 1857년(철종8) 고향에 돌아와 운림산방(雲林山房)을 세우고 85세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소치 특유의 문기가 드높은 불후의 작품들을 남겼다. 오늘날 5대(五代) 화가의 터전을 마련한 남종(南宗) 문인화(文人畵)의 토착화를 일궈낸 업적은 조선조 후기 회화사(繪畵史)의 커다란 획으로 평가되고 있다. 초대 소치(小癡) 허연(許鍊), 2대 미산(米山) 허형(許瀅), 3대 남농(南農) 허건(許楗), 4대 임전(林田) 허문(許炆), 그리고 5대 허전(許塡), 허준(許埈)이다. 운림산방은 전라남도 지방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