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9년~1618년) 자는 단보(端甫)이고 호는 교산(蛟山) 또는 성소(惺所)이다. 1594년(선조27) 정시문과 을과에 1597년(선조30) 중시 갑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였으며 병조좌랑을 거쳐 황해도도사가 되었다. 1606년(선조39) 명나라 사신을 영접, 탁월한 명문장으로 이름을 떨쳤고 『난설헌집』 목판본을 출간했으며 다음해 공주목사 형조참의에 올랐고 1610년(광해군2) 진주부사(陳奏副使)로 명나라에 가서 천주교의 기도문을 얻어왔고 1614년(광해군6) 천추사(千秋使)로 또 명나라에 다녀와 병조․예조 판서를 거쳐 좌참찬에 승진되었다. 그의 최초 한글소설 『홍길동전』은 사회제도의 모순을 비판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걸작이며 그의 저서인 성소부부소(惺所覆瓿藁) 서문에서 명나라 사신 난우(蘭嵎) 주지번(朱之蕃)은 “내가 사명(使命)을 받들고 조선에 가서 조선국의 많은 관신사(冠紳士)들과 추종했는데 그중에서 허씨(許氏) 집안이 그 으뜸을 차지하였는 바 이는 바로 그 계장원(季壯元)의 문집이다. 그의 문장은 우여완량(紆餘婉亮)하여 감주(弇州)의 만년의 작품과 같고 그의 시(詩)는 창달섬려하여 화천(華泉)의 맑은 운치가 있으므로 나는 그윽히 기뻐하여 그이 전집(全集)을 요구했던 바 금년에 비로소 한질을 경저리(京邸吏)에게 보내와 전달하여 유원(留院)에 이른 것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