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자화(子禾)이고 호는 간악(艮岳)이다. 세종27년(1445) 진사과에 합격하였고 1451년(문종1) 친시문과(親試文科)에 급제하여 옥당(玉堂)에 들고 대사간(大司諫)이 되었다.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와 사헌부대사헌을 거쳐 이조판서가 되었다. 성품이 염정(恬靜)하여 벼슬길에 오래 있기를 좋아하지 않아 거처하는 가옥은 숙연하여 한사(寒士)같았다. 시문(詩文)에 능해 저서로 간악집(艮岳集)이 있다.
자녀들에게 훈계하기를 “항상 정주전서(程朱全書)의 절요(節要)를 언제나 읽어 외우고 바른 정설(正說)에 착안하여 필생(畢生)을 가지런히 닦아야 함을 상념전심(常念專心)하여 가히 지나치지 않는 것이 군자(君子)의 종(終)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