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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홍씨] 홍석주(洪奭周)

작성일 : 2019-12-04 14:01

1774(영조 50)1842(헌종 8) ()는 성백(成伯), ()는 연천(淵泉), 시호(諡號)는 문간(文簡), 우부승지(右副承旨) 인모(仁謨)의 아들. 1795(정조 19)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 직장(直長)으 거쳐 주서(注書)로검열(檢閱)을 겸하고, 1802(순조 2) 정언(正言)이 되었다.

이듬해 응교(應敎)로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온 후 교리(校理)․규장각 직각(奎章閣直閣)․검상(檢祥)․도승지(都承旨)․부제학(副提學)을 역임, 1815년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가 되었다.

이어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를 지내고, 1830년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승진, 이듬해 사은사(謝恩使)로서 다시 청나라에 다녀와서 1832년 양관 대제학(兩館大提學)을 지냈고, 1834년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거쳐 좌의정(左議政)에 올랐다.

이해 순조(純祖)가 죽자 총호사(摠護使)를 겸임, 이러 실록청 총재관(實錄廳摠裁官)이 되어 「순조실록(純祖實錄)」의 편찬에 참여했으며, 풍양 조씨(豊壤趙氏)의 외척으로서 헌종 초 안동 김씨(安東金氏)와 세도(勢道)를 다투어 조씨 집권의 일익을 담당했다.

1836(헌종 2) 남응중(南膺中)의 모반(謨叛) 사건에 연루되어 면직, 이듬해 대사헌(大司憲) 김 노(金 鏴)의 탄핵으로 삭출(削黜)되었다가 1839년 대왕대비(大王大妃) 조씨(趙氏 : 신정왕후)의 특지(特旨)로 복직,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가 되고 이어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에 이르렀다. 성리학(性理學)에 밝고 특히 문장에 있어서 10대가(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