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3(경종 3)~? 자(字)는 백효(伯孝), 호(號)는 대릉(大陵), 시호(諡號)는 문헌(文憲), 관찰사(觀察使) 창한(昌漢)의 아들. 1757년(영조 33)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설서(說書)․사서(司書)․의주 부윤(義州府尹)․이조 참의(吏曹參議)․승지(承旨) 등을 지내고, 홍국영(洪國榮)이 정권을 쥐고 세도정치(世道政治)를 하자 그의 백부(伯父)로서대제학(大提學)․공조판서(工曹判書)․강화 유수(江華留守) 등을 거쳐 1779년(정조 3) 좌의정(左議政)에 이르렀으나 이듬해 홍국영의 실각과 함께 파직되었다. 1858년(철종 9) 그의 손자 홍우선(洪祐善)이소청으로 복관(復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