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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홍씨] 홍봉한(洪鳳漢)

작성일 : 2019-12-04 13:50

1713(숙종 39)1778(정조 2) ()는 익여(翼汝), ()는 익익재(翼翼齋), 시호(諡號)는 익정(翼靖),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장인. 현보(鉉輔)의 아들. 1735(영조11) 생원(生員)이 되고, 음보(陰補)로 참봉(參奉)․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등을 지내고, 1743년 딸이 세자빈(世子嬪:혜경궁 홍씨)으로 뽑힌 뒤 이듬해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사관(史官)이 되었다.

1745년 광주 부윤(廣州府尹)에 특진, 1749년 세자가 대리청정(代理聽政)케 되면서 누진(累進)하여 다음해 어영대장(御營大將)에 오르고이어 예조 참판(禮曹參判)으로 연접도감 제조(延接都監提調)를 지낸후, 1752(영조 28)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가 되고, 이듬해 비변사당상(備邊司堂上)으로「임진절목(臨津節目)」을 찬진(撰進)하였다.

1755년 구관당상(句管堂上)․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 등을 역임, 이어 좌참찬(左參贊)에 승진, 1759년 세손사부(世孫師傅)가 되고, 1761년 세자의 평양 원유사건(平壤遠遊事件)에 인책한 이천보(李天 輔)․민백상(閔百祥) 등이 자살하자 우의정(右議政)에 발탁되고, 다시좌의정(左議政)을 거쳐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를 지낸 뒤 영의정(領議政)에 올랐다.

1763년 주청사(奏請使)로 청나라에 다녀오고, 그후 영조(英祖)의 정책에 순응하여 많은 업적을 이룩했으며, 특히 당쟁(黨爭)의 폐해, 인재의 발탁 등 시무(時務) 6()로 당면정책을 건의하여 시행케 하고, 백골징포(白骨徵布)와 환곡(還穀)의 작폐(作弊)엄금, 은결(隱結)의 재조사(再調査) 등을 단행하게 하여 국고의 충실과 백성부담의 절감(節減)을 기했다.

1771년 벽파(碧派)의 책동으로 사도세자의 두 아들의 관작을 삭탈하고 세손(世孫 : 정조)까지 해하려 할 때 이를 막다가 삭직(削職)되고 청주(淸州)에 부처(府處)되었으나, 홍국영(洪國榮)의 기민한 수습으로 시파(時派)가 승리하게 되어 풀려나온 후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영조(英祖)를 도와 조선 후기 문화부흥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