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12-04 13:46
1685(숙종 11)~1742(영조 18) 자(字)는 유량(幼亮), 생원(生員) 중화(重華)의 아들. 1710년(숙종 36)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721년(경종 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세자시강원 설서(世子侍講院說書)․병조 좌랑(兵曹佐郞)을 지내고 경상도도사(慶尙道都事)․병조 정랑(兵曹正郞)․문학(文學)․정언(正言)․지평(持平)을 역임하였다.
1727년(영조 3) 수찬(修撰)으로 경연 검토관(經筵檢討官)을 겸임, 이어 광주 부윤(광州府尹)이 되었으나 이해 정미환국(丁未換局)으로 노론(老論)이 화를 입을 때 파면당했다.
이듬해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북로 안무사(北路按撫使) 윤헌주(尹憲柱)의 종사관(從事官)으로 공을 세우고 지제교(知製校)․병조 정랑(兵曹正郞)을 거쳐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후 동래 부사(東萊府使)․수찬(修撰)․교리(校理)․강계 부사(江界府使), 공조와 형조의 참의(參議), 대사간(大司諫)․판결사(判決事)․무주 부사(茂朱府史) 등을 역임하고 1741년 영월 부사(寧越府使)로나가 앞서 단종이 죽자 강물에 투신자살한 시녀(侍女)의 충절을 기념, 민충사(愍忠祠)를 세워 제사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