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 양호(養浩) 號 관란(觀爛) 공이 영오(穎悟)의 재조(才操)로 힘써 공부하는데 게으르지 않 았으며 몸소 체험하는 공부에 마음을 두며 성리(性理)의 글에 젖어 기루니(涵養) 문사(文辭)가 굉박(宏博)하 여 울연(蔚然)히 우리당(吾黨)의 종장(宗匠)이 되었다. 서른여덟(38)에 임난(壬亂)에 김해가 포위되었다는 소문을 접하여 몸을 던져 싸우고자 성곽(城廓)에 이르자 성은 이미 함락(陷落)되어 통곡하여 금은산(金隱山)밑으로 돌아와 대암(大巖)의 곁에서 금서(琴書)로 자오(自娛)하고 소영(嘯咏) 자적(自適)하여 종신(終身)토록 세상에 나아오지 않았으니 후인들이 공의 성덕(盛德)을 아름답게 여겨 그 바위를 덕암(德巖)이라 이름하고 덕암은 곧 마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