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부 응해(應海) 字 군거(君擧) 號 죽포(竹圃) 선조18년 을유(1585)24세에 을과(乙科)에 뽑혀 벼슬은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 무공랑박사(武功郞博士) 승사랑전생서봉사(承仕郞典牲署奉事)이다. 나이 31세에 임진란을 당하여 형 팔개(八凱)와 더불어 분의(奮義)에 몸을 돌보지 않고 나라를 위해 처자(妻子)를 회곡(回谷) 산중에 조치하고 난에 임하니 장정(壯丁) 28의 정병(精兵)으로 동래부사(東來府使) 송공상현(宋公象賢)의 진(陳)에 이르는데 언양(彦陽)에서 갑자기 왜적(倭賊)을 만나 분격(奮擊) 참획(斬擭)수십급하였다. 드디어 적(敵)은 흩어져 양산(梁山)에 이르러 우참(又斬) 30여급하여 마침내 부산(釜山)에서 수만의 적을 만나 싸우는 중에 맹장(猛將) 빗을 베이니 난이 거의 평정되는 듯 했으나 평창청일(平漲淸日)에게 큰 피해를 끼친 공은 공일대(一代)의 승첩(勝捿)이었으나 공은 사절(死節)하고 뒤에 형 팔개(八凱)공이 국가에 포전(褒典)을 입지못함 을 한(恨)하여 왔었다. 공의 4대의 사적(事蹟)이 읍지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