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11-26 14:55
세종~성종조, 세종1년 기해(1419)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 20년 무오(1438)에 문과하여 행 성균관전적(典籍)에 올랐으며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에 보직(補職)되고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에 옮겼으며 승문원박사(承文院博士)에 제수되었고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을 겸하였다. 이어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을 거처 다시 병조정랑(兵曹正郞)을 거처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경유(經由) 고령현감으로 나갔다.
외직(外職)은 대구 곤양(昆陽) 흥해의 세 곳 군수(郡守)를 전역(轉歷)하였고 목민관(牧民官)의 치적(治蹟) 을 거두었다. 다시 내직(內職)에 돌아와 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을 거쳐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좌부빈객(左副賓客)을 거처 청환직(淸宦職)으로 시종(始終)한 공을 사림(士林)이 엄선(嚴選) 청백리(淸白吏)에 그 영화로움을 세상에서 칭송하였다. 중종반정(中宗反正)후 정헌대부(正憲大夫) 홍문관대제학에 중직 되었다. 공이 김해에 이거(移居) 강호(江湖) 김선생 숙자(叔滋)와 인근에 사셨으므로 도의(道義)로 상종(相從) 교부(交孚) 우선(友善) 계의(契誼)가 유독(有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