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11-26 10:18
?~1535(중종 30) 자(字)는 개지(介之), 호(號)는 매창(梅窓), 조은공(釣隱公) 치운(致雲)의 손자(孫子), 수헌공(睡軒公) 응현(應賢)의 아들. 1498년(연산군4) 소과(小科)에 합겨, 1504년(연산군 10) 별시문과(別時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나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관직에 오르지 못하였다.
1506년(중종 원년)에 성균과 전적(成均館典籍)에 올랐고 사헌부정언(司憲府正言)․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교리(校理)를 거쳐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으로 있으면서 호당(湖當)에 선임되었다.
그후 이조 정랑(吏曹正郞) 및 의정부 검상(議政府檢詳)․지제고(知制誥)를 거쳐 1520년(중종 15) 동부승지, 이듬해 좌우부승지(左右副承旨)․장례원 판결사를 역임하여, 1527년 홍문관 부제학을 거쳐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에 발탁되었으며, 1528년 정조사로 명(明)나라에 다녀왔다.
1530년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형조 참판(刑曹參判), 이듬해 호조 참판(戶曹參判)․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을 거쳐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 등을 역임한 뒤 1533년(중종 28) 형조․호조의 판서에 올랐다. 1534년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로 고향에 물러나 있다가 병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