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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차씨] 차경석(車京石)

작성일 : 2019-11-25 14:27

한말(韓末) 보천교(普天敎) 창시자(創始者) ()는 륜홍(輪洪) ()는 월곡(月谷) ()은 고종(高宗) 17년 경진(庚辰) 188061일에 출생하여 1907년 륭희(隆熙) 1년 흠치교 (吽敎)에 입교 1909년 교조 강일순(姜一淳)으로부터 교통을 이어 받았으나 교주가 죽자 흠치교 (吽哆敎)에 대해 회의를 품고 금산사(金山寺)등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수년 동안 도를 닦은 끝에 선 도(仙道敎)를 개창하여 포교를 시작하고 1921년 보화교(普化敎)로 개칭하고 1922년 다시 보천교 (普天敎)로 개명하여 교세확장에 힘썼다. 그리고 보천교(普天敎)는 우국지사들이 모여 은밀한 독립 운동을 펼치는 거점의 구실을 하고 조만식(曺晩植) 한규숙(韓圭淑) 정복규(鄭復奎) 정상택(鄭常澤)등은 교주 차경석(車京石)과 상의하고 만주에 있는 민족운동 단체와 연락하여 30만원의 독립자금을 변출하다 발각되어 고당(古堂) 조만식(曺晩植)과 수방주(水方主) 한규숙(韓圭淑)의 거소인 전의사(典儀 祠) 별채에서 발견된 권총 두 자루와 실탄 40여발이 결정적 단서로 체포되어 고당(古堂) 조만식(曺 晩植)외 한규숙(韓圭淑) 정복규(鄭復奎) 정상택(鄭常澤)3명은 서울로 연행하여 서대문 형무소에 서 취조를 받게 되였는데 마침 취조관이 정읍 경찰서장을 지낸 구리다(栗田)인데 구리다(栗田)는 교주 차천자(車天子) 즉 차경석(車京石)의 인품을 흠모하고 있는 덕에 조만식(曺晩植)3인은 심한 고문을 당하지 않았다. 고당(古堂) 조만식(曺晩植)의 월북으로 차천자(車天子)의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적이 올바로 전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