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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최씨] 최익현(崔益鉉)

작성일 : 2019-11-12 11:23

1833(순조 33)~1906(광무 10) 자(字)는 찬겸(贊兼), 호(號)는 면암(勉庵). 경기도 출생.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의 고제(高弟 : 제자 중에서 가장 학식이 뛰어남).조선(朝鮮)의 정치가(政治家)로 배일파(排日派)의 거두(巨頭). 유림(儒林)의 명사로 문도(門徒) 수천 명을 헤아렸다.

1855년(철종 6)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1868년(고종 5)에 장령(掌令)을 거쳐 1873년 11월(고종 10) 호조 판서(戶曹判書)로 상소하여 만동묘(萬東廟)를 복귀, 서원(書院)을 폐지하는 등 대원군(大院君)의정책을 탄핵하다가 제주도로 귀양갔다. 한일 통상을 반대하여 정배(定配 : 배소를 정해 죄인을 유배시킴)되고, 후에 특사(特赦)를 받아1894년(고종 31) 공조 판서(工曹判書)로 임명되었다.

그해 김홍집(金弘集)이 영의정(領議政)에 임명되고 군국기무처를 설치, 갑오경장(甲午更張)이 시작되어 단발령이 내리자 이를 극력 반대했고, 1898년 궁내부 특진관(宮內府特進官)이 되었다.

후에 중추원 의관(中樞院義官)․의정부 찬정(贊政)․경기도 관찰사등을 임명받았으나 모두 사퇴하고, 1905년(광무 9) 11월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이를 반대하여 전라도 순창(淳昌)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日本軍)과 싸우다가 대마도(對馬島)에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 지급되는 음식물을 적이 주는 것이라하여 거절하므로 임병찬(林柄贊)등의 권고도 듣지 않고 “내 늙은 몸으로 어이 원수의밥을 먹고 살겠느냐, 너희들이나 살아서 돌아가 나라를 구해라” 하며 단식하다가 병(病)을 얻어 죽었다.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大韓民國) 건국 공로 훈장 중장(重章)이 수여되었다. 저서(著書)에는 「면암집(勉庵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