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11-12 11:21
1824(순조 24)~1864(고종 1) 아명(兒名)은 복술(福述), 호(號)는 수운(水雲)․수운재(水雲齋). 본래 몰락한 양반의 출신으로 한학(漢學)을 배웠으나 16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한때 아내의 고향인 울산(蔚山)에 내려가 무명 행상(行商)을 직업으로 전국의 각처를 돌아다녔다. 1855년(철종 6)부터 양산군천성내원암(梁山郡千聖內院庵)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하여 1860년(철종11) 4월 천주(天主) 강림의 도(道)를 깨닫고 동학을 창설하였다.
이 무렵 중국에서는 태평천국(太平天國)의 난과 영․불 연합군의 북경침입(北京侵入)사건이 있었고, 그 여파로 우리 나라에 대한 열강(列强)의 세력 침투가 시작되어 민족적인 위기를 조성하였다.
특히 서학류(西學 : 천주교)의 전래는 사상과 풍속이 다른 우리 나라에 많은 물의를 일으키자 최제우의 머리에는 이들이 시대적 울안으로 반영되어 서학에 대항하는 민족고유의 신앙으로 새 종교를 창설하기에 이르렀다.
그 교리는 제병강생(濟病長生)을 토대로하여 동양적인 유불선(儒彿仙)의 정신을 참작, “인내천(人乃天)”, “천심 즉 인심(天心卽人心)”의 사상을 주장하여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지상천국의 현실적인시앙을 표현한 것이었다.
동학은 구미(歐美), 일본(日本)의 침략과 정부이 압제로 인하여 농민 사 이에 급속히 파급되고 중대한 사회문제가 되었으며, 특히, 충청․전라․경상도에 많이 전파하여 후일 동학난을 일으키는 주체가되었다.
1863년(철종 14) 정부는 동학을 사교(邪敎)로 규정하고 최제우를 체포, 이듬해 3월 대구에서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죄로 처형하였으나 1907년(융희 1)에 그의 죄가 신원(伸寃)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