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11-01 15:43
1529(중종 24)~1590(선조 23) 자(字)는 효원(孝元), 호(號)는 수우당(守愚堂). 조 식(曺植)의 문인. 한성(漢城 : 서울) 출신. 학문이 뛰어나 명망이 높았으며, 1573년(선조 6) 이조(吏曹)의 천거로 참봉(參奉)․주부(主簿)․도사(都事)등에 임명 되었으나 모두 사퇴하고, 1581년 다시 지평(持平)으로 등용되었으나 취임치 않았다.
1584년 교정청 낭관(校正廳郎官)이 되어 「경서훈해(經書訓解)」의교정(交情)에 참여하고 곧 낙향, 1598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 때 그 배후자로 길삼봉(吉三峰)이란 의문의 인물이 등장하자 강 해(姜 海)․양천경(梁千頃)에 의해 그가 길삼봉이라는 무고를받고 투옥당했다.
한때 선조의 특사로 석방되었다가 다시 투옥, 정적(政敵)인 서인 (西人) 정 철(鄭 澈)의 국문(鞠問)을 받다가 옥사(獄死)했다. 이듬해동 인(東人)이 집권하자 신원(伸寃)되었다. 당대 저명한 성리학자(性理學者)로서 전정경의(專精敬義)를 학문의 태도로 삼았고, 학문이란 구설(口舌)과 문장(文章)에서 떠나 실생활에 적응시켜 실천해야 된다고 주창했으며 특히 기절(氣節)을 숭상했다. 대사헌(大司憲)에 추증(追 贈), 진주(晋州)의 덕천서원(德泉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