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字)는 대창(大昌), 호(號)는 동헌(東軒). 명나라에서 영안 태수(永安太守)․한림 학사(翰林學士) 등을 지내다가 아버지 갈송(碣頌)이 조선(朝鮮)에서 귀국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형 풍세(豐世)․아우 산보(山甫)와 함께 우리나라에 와서 아버지를 극진히 봉양하다가 상(喪)을 당해 3년간 시묘(侍墓)를 하루같이 마쳤다. 3형제가 귀국을 단념하고 유람삼아 남하(南下)하여 형과 나주(羅州)에 세거지를 마련했다. 1861년(철종 12)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추증(追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