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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채씨] 채수(蔡 壽)

작성일 : 2019-10-29 11:33

1449(세종 31)1515(중종 10). ()는 기지(耆之), ()는 나재(懶齋), 시호(諡號)는 양정(襄靖). 1468(세조 14) 생원(生員)이 되고, 1469(예종 1) 추장문과(秋場文科)의 초시(初試)․복시(覆試)․전시(殿試)에 장원으로 급제, 이석형(李石亨)과 함께 조선 개국 이래 삼장(三場)에 연이어 장원한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이해 부수찬(副修撰)으로 춘추관 기사관(春秋館記事官)이 되어「세조실록(世祖實錄)」의편찬에참여하고, 이듬해「예종실록(睿宗實錄)」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1475(성종 6) 이조정랑(吏曹正郞)으로 음악(音樂)에 조예가 깊어 장악원(掌樂院)의 관직을 겸하였으며, 1476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을과(乙科)로 급제, 사가독서(賜暇讀書)했다.

1478년에 응교(應敎)로 도승지(都承旨) 임사홍(任士洪)의 비행을 탄핵하여 외직(外職)으로 좌천되게 했고, 1479(성종 10) 정현왕후(貞顯王后 : 윤씨)의 폐위(廢位)에 반대했다가 파직, 1481년 용서되어 직첩(職牒)이 환급(還給)되었다. 그후 제학(提學)․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대사성(大司成)․호조 참판(戶曹參判)을 역임, 1506(중종 1) 정국4등공신(靖國四等功臣)으로 인천군(仁川君)에 봉해졌다.

1511년에 지은 패관소설(稗官小說)「설공찬전(薛公瓚傳)」은 그 내용이 윤회화복(輪回禍福)으로 민심(民心)을 소란시킨다는 탄핵을 받아 불태워 버렸다. 그후 함창(咸昌)에 은거, 독서와 풍류로 여생을 보냈다. 산경(山經)․지지(地誌)․시문(詩文)에 능했다. 함창(咸昌)의 임호서원(臨湖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