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9-09 11:59
1833(순조 33)~1886(고종 23) 초명(初名)은 만화(晩和), 자(字)는 경취(景翠), 호(號)는 송간(松磵), 운섭(雲涉)의 아들. 운철(雲澈)에게 입양. 1864년(고종 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참판(參判)을 지내고, 1881년 (고종 18)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의 한 사람으로 일본을 시찰, 귀국 후 경리통리기무아문사(經理統理機務衙門事)가 되었다.
이듬해 임오군란(壬午軍亂)으로 청나라 군대가 입성(入城)하자 영접관(迎接官)이 되었고, 1883년 협판군국사무(協辦軍國事務)를 지냈으며, 1884년에는 갑신정변(甲申政變) 실패 후 사대당(事大黨) 내각이 조직될 때 개성 유수(開城留守)가 되었다. 이듬해 협판내무부사(協辦內務府事)를 거쳐 1886년 협판교섭통상사무(協辦交涉通商事務)에 전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