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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조씨] 조진관(趙鎭寬)

작성일 : 2019-09-09 11:39

1739(영조 15)1808(순조 8) 자(字)는 유숙(裕叔), 호(號)는 가정(柯汀), 시호(諡號)는 효문(孝文), 이조 판서(吏曹判書) 엄(曮)의 아들. 1762년(영조 38)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1771년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에 임명되었으나 사퇴, 1775년 세자익위사시직(世子翊衛司侍直)이 되어 구현시(求賢試)에 장 원하고,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올랐으며, 제학(提學)․광주부윤(廣州府尹)을 지냈다.

1776(영조 52) 아버지가 홍국영(洪國榮)의 세도정치(勢道政治)를 배척하다가 무고를 받아 투옥되자, 신문고(申聞鼓)를 쳐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용납되지 않아 칼로 몸을 찔러 자살을 기도했다가 실패한뒤, 이듬해 관내 남한산성(南漢山城)의 군량(軍糧)을 향리(鄕吏)가 사 취한 사건이 드러나자 책임자로서 파직되었다.

홍국영의 실각 후 1788(정조 12) 돈령부 도정(敦寧府都正)에 이어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대사간(大司諫)․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를 역임, 1796년에 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가 되고 도승지(都承旨)․형조 판서(刑曹判書)를 거쳐 1800(정조 24) 이조 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했다. 뒤에 홍문관 제학(弘文館提學)을 지내고 호조․병조․형조․공조의 판서(判書)를 역임, 좌참찬(左參贊)을 거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