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字)는 안중(安仲). 1563년(명종 18) 진사(進士)가 되고,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부장(部將)을 거쳐 장연(長連) 현감(縣監)․호남(湖南) 좌수영(左水營) 우후(虞侯)․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사온서(司醞署) 영(令) 등을 역임한 후 홍주(洪州)․해주(海州) 판관(判官)을 지냈다. 그 후 개천(价川) 군수(郡守)를 지내다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괴산의 송평(松坪)으로 돌아와 다시 관계(官界)에 들어가지 않으려 하였으나 성안 군수에 임명되어 근무하다 연로하여 퇴임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분개하여 병석(病席)에서 분기, 각처로 격문을 보내어 천여 명의 의병(義兵)을 규합하여 용맹하게 싸우다가 충주(忠州)에서 전사(戰死)하였다. 그후 병조(兵曹) 참의(參議)에 추증(追贈)되었고, 괴산의 칠충사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