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호(諡號)는 양도(良度). 1329년(충숙왕 16) 음보(蔭補)로 벼슬에 올라 1361년(공민왕 10) 영복도감(永福都監) 판관(判官)이 되어 금어대(金魚袋)를 받았다. 1363년(공민왕 12) 소부감(小府監) 소윤(少尹), 1365년(공민왕 14) 수원(水原) 부사(府使), 이듬해 감문위(監門衛) 대호군(大護軍), 1367년(공민왕 16) 흥위위(興威衛) 대호군(大護軍)이 되었다. 이듬해 전의령(典儀令)에서 단기감(單器監)으로 전임되었고, 1369년 충주(忠州) 목사(牧使)가 되었다. 1379년(우왕 5) 예의(禮儀) 판서(判書)를 거쳐 이듬해 판도(版圖) 판서(判書)가 되고, 1381년(우왕 7) 개성윤(開城尹)․상호군(上護軍)에 올랐다. 1385 년(우왕 11) 성근좌리공신(誠勤佐理功臣)에 책록,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순성군(淳城君)에 봉해졌다. 일찍이 아버지 조염(趙廉)를 수행 중국으로 갈 때 아버지가 병환으로 신고(辛苦)하자 원제(元帝)가 어의(御醫)에게 명하여 치료토록 하였으나 효험이 없고 병세가 날로 침중하므로 그가 손가락을 태워 약에 타서 드리고 회생시키니 세상사람들이 소지공(燒指公)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