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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정씨(丁氏)] 정약용(丁若鏞)

작성일 : 2019-09-05 11:02

1762~1836 자는 미용(美庸) 송보(頌甫) 처음 자는 귀농(歸農), 호는 다산(茶 山) 삼미(三眉) 여유당(輿猶堂) 사암(俟菴)으로 재원의 아들이다. 조선시대 실학자. 1776년 상 경, 이듬해 이익(李瀷)의 유고를 보고 민생을 위한 경세의 학문에 뜻을 두고 이벽(李蘗)으로 부터 서학(西學)을 배웠다. 1789년 식년문과에 급제, 수찬을 거쳐 경기도 암행어사로 나가 연천현감 서용보(徐龍輔)를 파직시켰으며, 이듬해 동부승지 병조참의가 되었으나 주문모(周文 謨) 사건에 연루되어 금정도(金井道) 찰방으로 좌천되었다. 병조참의 형조참의 등을 지내며 규장각의 편찬사업에 유득공(柳得恭) 박제가(朴齊家)등과 함께 참여했다, 1799년 공서파(攻西 派)로부터 서학문제로 탄액을 받자 자명소(自明疏)를 올리고 사직, 1801년 신유박해 때 장기 (長䰇)로 유배된 뒤에 황사영(黃嗣永) 백서사건(帛書事件)으로 강진으로 이배되어 다산 기슭 에 있는 윤박(尹博)의 산정에서 18년간 학문에 전념, 많은 저술을 했다. 1818년 이태순(李泰 淳)의 상소로 풀려나와 고향에서 저술생활로 여생을 보냈다.

그의 학문체계는 사상적으로 유형원(柳馨遠)과 이익(李瀷)의 주류를 계승하여 유학의 정신체 계에 기반을 두고 있으나 다분히 양명학적인 면을 가지고 있으며, 이이(李珥)의 주자학적인 실천윤리와 홍대용(洪大容) 박지원(朴趾源) 박제가(朴齊家) 등 북학파의 사상을 흡수, 집대성 했고, 이기론에 있어서 이황(李滉)과 이이의 학설을 합성하고 있다. 1910년 규장각 제학(提 學)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저서로는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