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5~1593. 자(字)는 구범(久凡)이고 호(號)는 치강(治岡)이다. 1592년 임진왜란 시 김해 창영을 왕래하면서 침범하는 왜구(倭寇)를 섬멸(殲滅)하였고 왜장(倭將) 가토(加藤淸正)가 무력으로 김해성(金海城)을 함락(陷落)시키자 변응성(邊應星) 갈봉하(葛逢夏) 등이 거느린 관군(官軍)과 합세(合勢)하여 김해성의 왜적을 무찔러 3승1패의 치열한 전투를 하는 중 경상(慶尙) 감사(監司) 김수(金粹)가 원군(援軍) 500명(名)을 보내와 북문으로 돌입하여 화공법(火攻法)을 사용해 김해성을 탈환하였다. 이후 창영 영산에 침입한 왜적을 공격하는 선봉장이 되어 전투 중 전사하였다. 선무원종2등공신에 책록되고 훈련원(訓練院) 훈련부장(訓練部將)에 추증(追贈)되었다. 충남 보령에 공신비가 수립되고 <공신록권> 및 「고성향교지(固城鄕校誌)」및「경상남도유림보감(慶尙南道儒林寶鑑)」에 전공사적이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