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9-04 11:08
1572(선조 5)~1645(인조 23) 자(字)는 상수(祥叟), 시호(諡號)는 양무(襄武). 1592년(선조 25) 무과(武科)에 급제, 이해 임진왜란에 선전관(宣傳官)으로서 왕을 호종(扈從)하여 부장(部將)이 되고, 사복시 주부(司僕寺主簿)․감찰(監察)․영산 현감(靈山縣監)을 역임, 1605년 무안현 대장(務安縣大將)으로 흑산도(黑山島) 앞바다에 침입한 왜구 6명을 참획(斬獲)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丁卯胡亂)에 흩어진 병사를 수습, 철산(鐵山)의 의병장(義兵將)으로 용골산성(龍骨山城)에서 후금(後金)의 병사 반수 이상을 살해하고 포로로 된 백성 수천 명을 구출, 그 공으로 철산 부사(鐵山府使)에 특진되고, 이어 용천 부사(龍川府使)로 방어사(防禦使)․의주 부윤(義州府尹)을 겸직, 적이 철수한 뒤 구성 부사(龜城府使)․개천 군수(价川郡守)․오위장(五衛將)․부총관(副摠管)을 거쳐, 1630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全羅左道水軍節度使)가 되고, 경상도․전라도의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거쳐, 1635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부총관․훈련원 도정(訓鍊院都正)을 겸임했다. 철산의 충무사 (忠武祠)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