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9-04 10:44
1401(태종 1)~1469(예종 1) 자(字)는 경부(敬夫), 시호(諡號)는 문절(文節), 제(提)의 아들. 경사(經史)에 박통하여 왕명으로 대군사부(大君師傅)에 선발되어 영응대군(永膺大君) 염(琰 : 세종의 아들)에게 학문을가르쳤다.
1439년(세종 21) 경창부승(慶昌府丞)이 되었고, 1450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부교리(副校理) 성균사예(成均司藝)를 거쳐, 1455년(세조 1)에 좌익공신(左翼功臣) 3등이 되었다.
이듬해 사성(司成)으로 역대병요(歷代兵要)르 편찬하고 훈련원제조(訓練院提調)로 많은 무장(武將)을 취거(取擧)하였다. 1457년 제학(提學)으로서 하원군(河原君)에 봉해지고 이해 의경세자(懿敬世子)가 죽자 3년간 수묘관(守墓官)을 지냈다. 이어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를 거쳐 1463년 대사성(大司成)이 되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좌찬성(左贊成)에 이르러 치사(致仕),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대구의 청백서원(淸白書院) 광주(光州)화담사 청주(淸州) 청절사(淸節祠)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