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9-04 10:42
1396(태조 5)~1478(성종 9) 자(字)는 백휴(伯睢), 호(號)는 학역재(學易齋), 시호(諡號)는 문성(文成), 현감(石城縣監) 흥인(興仁)의 아들. 권 우(權 遇)의 문 인. 1414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장원, 예빈시 주부(藝賓寺主簿)․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예조좌랑(禮曹佐郞) 병조 좌랑(兵曹佐郞)을 지냈다.
예조와 이조의 정랑(正郞)을 거쳐 집현전 학사(集賢殿學士)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 집현전 직제학(直提學)에 올랐으며, 1427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장원, 이해 좌필선(左弼善), 부제학(副提學)․우군 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가되었다.
대제학 정 초(鄭 招)와 함께 대통력(大統曆)을 개정하고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을 지어 역법(曆法)을 개정했으며, 1432년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 이조 참판(吏曹參判)을 거쳐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로 있다가 1439년 형조 참판(刑曹參判) 이듬해 형조 판서(刑曹判書)에 승진, 이해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귀국, 1442년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으로「사륜요집(絲綸要集)」을 편찬, 1443년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로서 전제상정소(田制詳定所)가설치되자 제조(提調)를 지내고 1445년 우참찬(右參贊)으로「치평요 람(治平要覽)」을 찬진(撰進)했다.
예조 판서(禮曹判書)를 거쳐 이조 판서(吏曹判書) 공조판서․좌참찬(左參贊)을 지내고 1452년(문종 2)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전임, 1453년(단종 1)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로 계유정난(癸酉靖亂)에 수양대군(首陽大君 :세조)을 도와 우의정(右議政)에 승진, 정난공신(靖難功臣) 1등으로 하동부원군(河東副院君)에 봉해졌다.
1455년 영의정(領議政)에 오르고 좌익공신(佐翼功臣) 2등이 되었으며, 1468년(세조 14) 남 이(南 怡)의 옥사(獄事)를 다스린 공으로 다시 익대공신(翊戴功臣) 3등이 되었다. 1470년(성종 1) 원상(院相)으로서서정(庶政)을 총괄, 이듬해 좌리공신(佐理功臣) 2등이 되었다.
조선 초기의 대표적 학자의 한 사람으로 천문(天文)․역법(曆法)․아악(雅樂) 등에 관한 많은 책을 편찬했고, 김종서(金宗瑞)등과「고려사(高麗史)」를 찬수(撰修), 한편 세종을 도와 성삼문(成三問)․신숙주 (申叔舟) 등과「훈민정음(訓民正音)」창제에 공이 컸으며, 권 제(權 踶)․안 지(安 止) 등과「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