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9-04 10:40
?~1434(세종 16) 자(字)는 열지(悅之), 시호(諡號)는 문경(文景), 집의(執義) 희(熙)의 아들. 1405년(태종 5)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검열(檢閱)이 되고, 1407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급제, 좌정언(左正言)이 되었다.
그후 판군자감사(判軍資監事)․판승문원사(判承文院事)를 거쳐 우사간(右司諫)이 되고 1419년(세종 1) 공조와 예조의 참의(參議), 우대언(右代言), 이듬해 좌대언(左代言), 1422년 예조 참판을 지낸 뒤 다음해에 함길도 도관찰사(咸吉道都觀察使)로 나갔다.
그뒤 형조 참판(刑曹參判)․이조 참판(吏曹參判)․좌군총제(左軍摠制)이조판서(吏曺判書)를 역임, 1430년 공조 판서(工曹判書)로서 왕명으로「농사직설(農事直說)」을 찬(撰)했고, 이어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으로 정인지(鄭麟趾)와 함께 역법(曆法)을 개정했다.
다음해 다시 왕명으로「회례문무악장 (會禮文武樂章)」을 찬진(撰進), 이어 간의대(簡儀臺) 제작에 필요한 이론적 자료를 여러 고전에서 수집했다. 1433년 이 천(李 蕆)과 함께 혼천의(渾天儀)를 제작했으며「삼강행실도발(三綱行實圖跋)」을 편찬했다. 경사(經史)에 밝았고 역산(曆算)․복서(卜筮)에도 통달했다. 세종성업(世宗盛業)의 큰기둥이었다. 괴산(槐山) 문경사(文景祠) 광주화담사 배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