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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계정씨] 정온(鄭 蘊)

작성일 : 2019-09-03 15:37

1569(선조2)1641(인조19) 자(字)는 휘원(輝遠), 호(號)는 동계(棟溪)․고고자(鼓鼓子), 시호(諡號)는 문간(文簡), 진사(進士) 유명(惟明)의 아들, 정인홍(鄭仁弘)․정구(鄭 逑)의 문인.

1610(광해군 2) 진사(進士)로서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고 설서(說書)․사서(司書)․정언(正言) 등을 역임, 1614(광해군 6) 부사직(副司直)으로 영창대군의 처형이 인륜(人倫)에 어긋났음을 상소하고 그 가해자인 강화 부사(江華府使) 정 항(鄭 沆)을 참수하라고 주장, 이로 인해 10년간 제주도 대정(大靜)에서 귀양살이 했다.

유배생활 중에 「덕변록(德辨錄)」「망북두시(望北斗詩)」「망백운가(望白雲歌)」를 지어 애군우국(愛君憂國)의 뜻을 토로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석방되어 헌납(獻納)으로 등용, 뒤에 사간(司諫)․이조 참판(吏曹參判)․대사간(大司諫)․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부제학(副提學) 등을 역임하였다.

1636(인조 14) 병자호란 때 이조 참판(吏曹參判)으로서 김상헌(金尙憲)과 함께 척화(斥和)를 주장, 이듬해 화의(和議)가 이루어지자 숭명주의자(崇明主義者)로서 벼슬을 단념하고 덕유산(德裕山)에 들어가 5년 만에 죽었다. 영의정에 추증, 광주의 현절사(顯節祠), 제주의 귤림서원(橘林書院), 함양의 남계서원(藍溪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