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9-03 10:00
?~1151(의종 5) 호(號)는 동하(東河). 향공(鄕貢)으로 문과(文科)에 급제, 내시(內侍)에 들어갔고, 인종(仁宗) 때 국자 사업(國子司業)․기거주(起居注)․지제고(知制誥)를 역임, 최 충(崔 冲)․김부식(金富軾) 등과 함께 시폐십조(時弊十條)를 올렸으나 거부당했다.
1146년(인종 24) 예부 시랑(禮部侍郞)이 되어 태자(太子 : 의종)에게 강서(講書)하고, 공예왕후(恭睿王后)가 차자(次子) 대령후(大寧侯)를 태자로 세우려는 것을 저지하여 인종의 신임을 얻어 승선(承宣)에 올랐으며, 1149년(의종 3) 한림학사(翰林學士), 그 후 추밀원 지주사(樞密院知奏事)를 지냈다. 문명(文名)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