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8-29 14:01
아명(兒名)은 경시(景施), 자(字)는 경업(經業), 호(號) 는 위당(爲堂). 1910년 중국(中國)에서 동양학(東洋學)을 전공하면서 신규식(申圭植)․박은식(朴殷植)․김규식(金奎植)․신채호(申采浩) 등 과 동제사(同濟社)를 조직, 독립운동(獨立運動)과 동포들의 계몽에 힘썼다.
1918년 귀국하여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 學校)․이화여자전문학교 (梨花女子專門學校)․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醫學專門學校)에서 교편 을 잡고, 국학(國學)․동양학(東洋學)을 강의하면서 시대일보(時代日 報)․동아일보(東亞日報) 등의 논설위원으로 총독부(總督府)의 침략 정책(侵略政策)을 비판, 국혼(國魂)을 환기시켰다.
1948년 국학 대학장(國學大學長)․초대 감찰위원장(監察委員長)이 되고, 6․25사변 때 납북(拉北)됐다. 국문학사․한문학․국사학 등 전반적인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저서(著書)로는 조선사 연구(朝鮮史 硏究)를 남겼다.